▲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률구조공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불거진 여성비하와 허위 혼인신고, 아들 퇴학 무마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유성호
안경환 교수가 법무부장관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하였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난 며칠의 시간은 그에게 참 길고 모진 시간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글쓰는 이'로 지칭할 정도로 정체성의 핵이 되었던 자신의 책과 칼럼이 난도질당했고 여성관이 도마에 올랐으며 급기야 가족과 혼인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찰개혁'이란 대의(大義)의 나래를 접어야 했다.
안 교수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나에게도 이 시간은 힘들고 갑갑한 것이었다. <남자란 무엇인가>를 읽어보았고 내가 가진 감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만,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서울대 법대에 법여성학 교육을 열었고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많은 성차별 사건을 다루었던 분이 아니던가. 그의 개인생활에 오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학과 법학교육에 큰 족적을 남겼고 그것이 앞으로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추진할 개혁에 중요한 큐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공과 사의 여러 층위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주관적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안 교수님의 책에 나타난 '여성관'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안 교수님이 법학에 있어 파이오니어(pioneer, 개척자)이고,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페미니즘의 동조자이자 우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했을까. 안 교수님의 개인생활의 일은 내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기에 이 글에서는 안 교수님의 '검증'에서 나타났던 여성과 남성관, 젠더인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사검증에서 젠더인식 나아가 젠더정책에 대해서 제안점을 정리하면서 나 자신의 성찰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안경환, 그가 법학에 남긴 의미먼저, 많이 나왔던 이야기지만 안 교수님의 젠더인식을 앞의 책 하나로 등치시키거나 축소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점이다. 그의 도덕성 역시 젠더라는 잣대 하나를 따로 '떼어서' 보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뒤에 나오겠지만, 젠더는 그렇게 '하나의 잣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 한권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걸어온 삶과 활동 속에서 그의 젠더인식을 읽어야 한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도 안경환 교수님이 법학에 남긴 의미는 매우 크다. 그는 법대에서 영미법과 헌법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인권법, 법과 문학과 같은 강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법 해석학이 중심으로 이루는 법학의 헤게모니에 문제제기 하면서 법과 문학, 법과 인권의 역동 속에서 법을 다루는 교육과 연구의 모습을 스스로 그려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법사회학적인 표현대로 하면, 법전 속의 법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삶 속에 실행되는 '살아있는 법'에 근접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법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개혁을 위해 노력해 온 분이다. 현재의 법학전문대학원의 제도 설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법학 내부의 전공(헌법, 민형, 형법과 같은)간 장벽을 허물어 소통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새로운 사유를 하는 많은 제자를 길어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의 저술과 번역 작업도 헌법, 영미법을 넘어서서 소수자, 여성, 셰익스피어, 사랑, 인물평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고 다작(多作)이다. 일찍이 <법은 누구편인가>(러셀 W. 겔로웨이)를 번역할 정도로 '법의 편'을 의식한 드문 법학자라고 나는 평가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그가 페미니즘 법학에 대해 관심이 있지 않았나 싶다.
널리 알려졌듯이, 안경환 교수는 법대 학장 재직 시절 서울대 법대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교수를 임용했다. 그의 정년퇴임 대담에서 보면 1988년 최초의 여성 미연방 대법원의 대법관 샌드라 오코너(Sandra Day O'Connor)가 "당신네 학교에 여교수가 몇 명이냐?"고 물어보아 당황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성교수의 임용을 성 평등뿐 아니라 한국 법학교육의 국제화, 다양화라는 견지에서 바라보았고 10여년이 지나서 법대학장으로서 이런 생각을 용감하게 실천에 옮긴 것이다.
마침, 2002년 당시 법대 학생회에서 여성교수의 임용과 법여성학 강과개설을 자신의 1순위 공약에 놓았던 여성 학생회장이 당선되었고, 이런 공약은 학생들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다. 안경환 학장단은 이듬해 봄, 법여성학 공채공고를 내고 절차를 진행시켜서 여성교수를 임용하였으며, 비슷한 시기 여러 명의 여성교수들을 채용하였다.
이후 안경환 교수는 법대 내부와 법대 동창회에서 '서울대 법대를 망치려고 하는가', '여성이 어떻게 법대 교수가 되느냐' 등의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인식이 바로 오늘날까지 현존하는 '침묵하는' 남성연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런 침묵의 연대를 깨고 실천한 것에서 안 교수님도 스스로 '소수자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젠더인식이 소비되는 방식과 내용의 문제2000년대 중후반쯤, 아직 여성교수를 한 명도 두지 않았던 다른 법대에서 어떤 남성교수가 여성교수의 임용에 대해 제안을 하자 주변 남성교수들이 '여자가 그리 좋은가, 여자는 집에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 적이 있다. 법학 교수들이 이런 시정잡배와 같은 말을 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런 언사는 남성들의 머릿속에 여자란 '사사화된' 존재, '사적인' 영역에 머무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시켜 준다. 남성으로서 성평등을 관념적으로 말하는 것과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안 교수는 진보남성으로도 드물게 후자이다.
여성교수들을 채용하여 자기 동료로 맞이하여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서울대와 법학, 그리고 우리사회의 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나는 이렇게 안 교수님을 기억할 것이다. 그의 여성관이 잘못이든 아니든 간에 며칠 동안 한 인간이 살아온 삶과 족적을 훼손하는 방식의 '검증'이란 정당하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그는 전국민을 상대로 하여 고해성사를 하였으니 이제 개인적인 상처는 내려놓았으면 한다.
물론 서울대 법대에 여성교수를 임용한 것이 무에 그리 대수냐고, 그것도 알고 보면 서울대 법대 패권주의의 표현 아니냐고 응수할 수 있다. 나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문제제기에 수긍한다. 하지만 이제 법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갈등 해소에 있어서 최전방에 서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지난 3월에 내려진 대통령 탄핵결정이 그것을 단적으로 요약한다.
젠더 이슈에 있어서도 IMF 시절 농협 사내부부 조기퇴직 사건에서 최근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한 KTX 비정규 여승무원 사건까지, 역시 대법원에서 다루어진 연예기획사 대표의 청소년 성폭력 사건,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진 낙태죄 합헌 결정, 병역 관련 결정 등 많은 사건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한국인들의 일상적 규범을 형성하고 있다. 아직은 미미할지 모르지만 젠더평등의 의제는 법조계에 거대한 구조변동을 가져오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