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곳이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최은경
시간은 흘러 어느덧 독서클리닉에 참가할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 달라고 해서 오후 4시 50분쯤 B1홀로 향했다. 전시장 오른쪽 한 편에 6개의 부스가 마련돼 있고,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름을 말하고 가운데 부스 앞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클리닉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속속 도착했다. 처음으로 서민 교수 얼굴도 봤다. 오후 5시가 됐다. 나는 행여 기침이 날까 용XX을 평소 복용량보다 많이 입에 털어 넣고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금정연 작가 앞에 앉았다. 어색하게 씩 웃으며 인사했다.
우선 기분 좋게 시작하는 의미로 나는 금정연 작가의 최근 책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에 사인을 요청했다. 기다리며 앉아 있자 새삼 몽글몽글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대화가 무지 재미있을 것 같은 기분.
사실 책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고민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알고 있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내 고민은 '더 깊이 있게 읽어야 해'라고 늘 생각한다는 점이다. 막상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건, 뭐랄까, 깊이 따위 고려하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랄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라고 금정연 작가는 말했고, 나는 바로 이 고민을 털어놨다.
"더 깊이 있게 읽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돼요.""꼭 깊이가 있어야 하나요?""음, 깊이가 있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지 않나요?""그렇긴 하겠죠.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폴 오스터랑... 줄리언 반스랑...""아, 그렇다면요..."금정연 작가는 한 권의 책이나 한 명의 작가를 다각도에서 보는 방법을 추천했다. 깊이를 얻는다는 게 하나의 주제나 작가만 파고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넓은 시선에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 보거나, 작가가 본인의 책에서 언급한 책을 따라 읽어보는 것.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재미있었다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책으로 독서를 확장해가는 것. 이런 것도 다 깊이 있는 독서라는 거였다. 나는 수긍이 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평소에 하던 독서 관련 생각을 부담 없이 털어놓았다. 금정연 작가는 내 생각에 자주 동의를 표했고 가끔 조언도 해 주었다. 때로는 내 쪽에서도 질문을 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 "글을 쓰실 때 자주 우시나요?"
이 질문을 한 건 금정연 작가 책에 '울고 싶다'는 표현이 많이 나와서였다. 심지어 인터넷 서점 자기소개에도 '울었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온다. 작가는 내 질문에 부끄러운 듯 웃더니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도 풋 웃고 또 무슨 질문을 할까 머리를 굴렸다.
독서클리닉은 독서 초보자에게나 나처럼 원래 책을 즐겨 읽는 사람에게나 다 좋을 듯했다. 책을 읽는데 마땅히 따라야 할 방법이란 게 있을 리야 없겠지만, 가끔 자극은 필요하다. 자극을 통해 한 단계 껑충 독서 수준을 높일 수도 있고, 모르던 작가 책을 읽거나, 새로운 시선으로 독서를 바라볼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신청자에게 독서클리닉은 의미 있는 자극제가 될 것 같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다음 해에는 더 많은 작가들이 독서 처방에 나서 주면 좋을 듯했다.
33분의 대화를 끝내고 금정연 작가가 대화 도중 끄적이던 메모를 얻어 부스에서 나왔다. 엠마뉘엘 카레르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이 좋다고 해서 읽어볼 생각이었다. 아참, 독서클리닉은 '사전 접수제'라 지금 신청할 수는 없다. 그러니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다음 해를 노려보세요!
그렇다고 도서전 이벤트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다. 나도 둘러보며 발견했는데 각 출판사 부스에서 작가와의 만남이 꽤 자주 진행됐다. B1홀의 이벤트 홀 두 곳에서는 강연도 열리고 있었다. 주말에는 배수아, 황석영, 김탁환 작가 등 유명한 작가들도 작가와의 만남에 얼굴을 비친다고 한다. 서울국제도서전 일정표에서 작가와의 만남 시간을 미리 파악하고 그 시간에 맞춰 들러 본다면 더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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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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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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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률 수십 대 일의 독서클리닉, 직접 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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