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뿌리조림을 마치고 식히는 동안 밥상에 그림책 펼치기
최종규
연뿌리조림을 마친 날
큰 냄비 가득 연뿌리조림을 마친 날, 따뜻한 조림으로 밥을 맛나게 먹고서 밥상을 치우고 닦은 뒤에 그림책을 올려놓습니다. 재미있지? 재미있게 누리렴. 아직 따스한 기운이 남아서 뚜껑을 열고 식히는 연뿌리조림 곁에서 그림책 하나를 사이에 놓은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옆방으로 갑니다. 조용히 눕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허리를 펴야겠어.
삼천오백 원 오른 달걀 한 판닭이 수천만 마리가 죽어 나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 뒤로 달걀값은 안 떨어집니다. 반 해가 넘었군요. 아무튼 우리 식구는 달걀 한 판을 장만해 놓으면 보름 남짓 먹어요.
국을 끓이며 가끔 달걀을 풀어요. 이러다가 달걀찜을 할 뚝배기를 하나 새로 장만했어요. 뚝배기로 달걀찜을 하면 한결 맛나리라 여겼어요. 면소재지에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달린 김에 가게에서 달걀 한 판을 사는데 요새 9000원을 치러요. 달걀값이 껑충 뛰기 앞서하고 대면 예전에는 5500원이었으니 삼천오백 원이 올랐네요. 달걀 한 판 값으로 갑자기 삼천오백 원이 뛴 셈이니 비싸다고 하면 비쌀 테지만, 달걀 한 판에 구천 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비싸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닭이 우리한테 베푼 알을 돈이 아닌 고마운 숨결로 헤아린다면 진작에 이만 한 값으로 받아도 되었다고 느껴요.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달걀을 너무 값싸게 너무 많이 사다가 먹은 탓에 '공장 축산'이 되었고, 이 흐름이 하루아침에 크게 말썽이 되어 수천만 마리에 이르는 닭이 슬프게 죽음길로 가고야 말았지 싶어요. 더 많이 먹는 밥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즐겁고 알맞게 먹는 밥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