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1980년 모습을 떠올려 보지만 믿기지 않는다
도토리숲
학교에서 교과서로 역사를 가르친다고 해서 이 역사 지식을 살갗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겪거나 치르지 않고서야 몸으로 느끼기 어려워서 머리에서 맴도는 지식이 되곤 해요. 손수 씨앗을 심어 보지 않는다면 씨앗 한 톨이 땅 속에서 자라서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흐름을 제대로 알기 어려워요.
지식하고 삶이 달라요. 지식만 있다고 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지 않아요. 어린이문학 <열두 살 삼촌>은 이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아이들이 어렴풋한 지식만 붙잡고서 자전거 도둑을 찾아내겠다고 달려드는 몸짓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하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아주 넌지시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겹쳐 놓습니다.
"여기서부터 엄마 가게 있는 곳까지는 아주 성스러운 곳이다. 겁나게 많은 사람들이 여서 피 흘리고 쓰러졌지. 저 동네는 아직도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어. 집집마다 한두 명씩 그날 일로 괴로워하고 있을 정도야." (87∼90쪽)
"삼촌은 민국이 너처럼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어. 자전거라고 해 봤자 할아버지가 타던 커다란 짐바리 자전거였지. 뒤에 짐을 실을 수 있는 큰 자전거는 할아버지의 자가용이었어. 할아버지가 싸전을 해서, 쌀가마니를 자전거에 싣고 다니셨지." (90쪽)<열두 살 삼촌>에 나오는 삼촌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래도 목숨은 잃지 않았으니 조카를 보는 나이로 자랐겠지요. 그러나 목숨은 건사했어도 마음에 남은 생채기는 아물지 않습니다. 내 한 몸은 살아서 남았으되 둘레에서 쓰러지고 넘어지고 고꾸라진 숱한 사람을 보아야 했어요.
1980년 5월 광주에서 헬리콥터가 떠서 무시무시하게 총알을 쏘아댔다는 이야기가 요즈막에 밝혀지려고 합니다. 그 무렵에 헬리콥터뿐 아니라 온갖 전쟁무기가 여느 길거리에 몰려들어 여느 사람들을 마구 총질해대며 죽음으로 내몰았어요. 두들겨 패고 밟고 죽이고, 또 두들겨패고 밟고 죽였어요.
민주와 평화와 자유를 바라지 않는 독재권력이 전쟁무기를 앞세워 사람들을 죽이고 밟았어요. 민주와 평화와 자유하고는 동떨어진 독재권력을 더 단단히 하려는 이들이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끌어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