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계곡 풍경
김은화
삼십 년의 간극 그렇다. KBS만 보고 살아온 엄마는 몰랐을 것이다. 바깥일을 하면서도 하루에 열 번 밥상을 차려내던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8시 반에 하는 드라마를 보고, 9시 뉴스를 보고 잠드는 것이었다. 10시만 되면 피곤에 지쳐 닭처럼 꾸벅꾸벅 조는 박 여사에게 교양 프로그램은 사치다. 지금은 은퇴해서 시간이 많지만, 핸드폰으로 유투브를 시청한다거나 TV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는 건 생각도 못한다. 카톡도 엉금엉금 겨우 배웠다. '빨갱이' 말만 나와도 도망가고 보는 습성은 박정희 시대에 공교육을 받은 유산이다. 근현대사 해석에 관한 한, 엄마의 시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9년에 멈춰 있다.
실은 나도 대학에 와서야 5.18을 왜 민주화운동이라 부르는지 알았다. 수능볼 때까지만 해도 3.15, 4.19, 10.26, 12.12, 5.18, 87년 6월 10일은 그저 외워할, 현대사의 숱한 숫자로만 남아 있었다. 그게 얼마나 헷갈렸냐면, 일제강점기 때 간도에서 의용군과 팔로군을 비롯해 독립운동을 벌였던 수많은 분파를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다가 대학교 와서 선배들과 함께 5.18답사를 가서야 그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고, 윤상원 열사의 묘에 가서 참배를 하고, 금남로를 거닐어 보고서야, 그 모든 사건들이 민주화를 위한 하나의 연속된 과정이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가 광주에 가 있는 그 시간에도 엄마는 일하고 있었다. 그 덕에 대학을 졸업했으면서 이제 머리가 굵은 자식은 부모를 얕잡아 보며 상식을 운운한다. 모름을 고백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왠지 미안해졌다. 처음 나한테 한글을 가르쳐줬을 때 모른다고, 느리다고 비웃지는 않았을 텐데…. 엄마는 뜻밖의 해결책을 내놨다.
"야야, 내 같은 사람들 많을 낀데, 구청에서 하는 문화센터 강좌에서 역사나 좀 알려주면 좋겄다. 할매 할배들이 맨날 영어, 컴퓨터 엑셀 이런 거 배워서 뭐할 끼고. 블로그 백날 알려 줘봐야 다음날 되면 바로 다 까먹어 버리는데."의외의 아이디어에 나는 물개박수를 쳤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다. 어르신들의 역사관이 바뀌면 안보 장사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어차피 정권 바뀌면 또 교과서 뒤집자고 할 게 뻔한데, 이제는 칼자루를 쥐었으니 방어를 할 게 아니라 공격을 하면 좋겠다. 시청,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는 한 달에 2만원밖에 안 하니, 학구열에 목마른 어르신들을 상대하기에는 딱이다.
답사할 곳도 천지다. 꽃놀이 하느라 바쁜 어르신들, 올라오는 길에 광주에 5.18 묘역도 둘러보시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비극이 서린 역사적 현장을 찾는 다크투어리즘을 일반 관광과 결합해 상품으로 내놓는 거다! 내가 이런저런 아이디어로 폭주하자, 엄마는 지루한 듯 딴청을 부린다. "날이 가물다더니 여(기) 계곡은 물마를 새가 없는 갑네. 물소리가 참 좋다." 아무튼 미워할 수 없는 없는 박 여사다.
엄마와 함께 밤하늘을 산책하며 그날 저녁, 숙소에 짐을 풀고 엄마와 함께 밤마실을 나왔다. 별들이 너무나 크고 선명해서 낚싯대를 드리우면 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북두칠성을 온전히 세어보았다. "니 완전 서울 촌년이네. 북두칠성을 우째 처음 보노." 비현실적이리만치 아름다운 밤하늘을 함께 바라보며, 1960년대에 마산에서 태어나 육십 평생을 살아온 엄마와 1980년대에 태어나 삼십 년 남짓 산 내가 거쳐 온 풍경의 간극을 헤아려 본다. 그래도 우리가 저 별들만큼이나 멀진 않겠지,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같은 풍경을 보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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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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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무섭다'는 엄마와의 5.18 구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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