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총장후보 1순위인 김사열 생명공학부 교수.
조정훈
2017년 1월 2일. 오랜 공석 끝에 이뤄진 경북대 총장 취임식이 파행을 빚고 만다. 예정됐던 경북대 글로벌프라자 효석홀 입구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총장 취임식 연기를 요구하는 피켓시위가 펼쳐졌기 때문. '2순위 총장'이라는 오명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경북대는 2014년 12월 '총장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를 통해 1순위로 김사열 생명공학과 교수를, 2순위로 김상동 수학과 교수를 선정해 교육부에 임명제청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총장임용 제청을 하지 않고 무슨 이유에선지 오래도록 방치했다.
이 과정에서 1순위로 선정된 김사열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총장임용 제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줄 것'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그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교육부가 항소하면서 불길한 예감이 나돌았다. 결국 경북대는 1순위와 2순위 후보를 총장 임용 후보자로 재추천했지만 교육부는 2순위인 김상동 교수를 총장으로 덜컥 임명하고 말았다.
4. 국립대 총장 임명 청와대 개입...적폐 중 적폐 경북대 총장이 1순위가 아닌 2순위 선정자가 정부에 의해 결정되자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북대 총장 1순위로 선정된 김사열 교수가 정권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반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확대됐다. 이에 대해 본인인 김사열 교수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우수석이 나를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경북대 교수들과 총학생회가 2순위 후보자의 총장 선임에 반대하면서 단식에 들어가는 등 강하게 반발하자 김상동 교수는 총장 취임식을 연기하고 교수회는 9명의 교수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총장 임용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경북대 범비상대위원회(이하 범대위)는 2016년 12월 28일부터 대학 본관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청와대와 교육부가 경북대 총장을 '2순위 후보'로 임명한 것은 국정농단의 결과"라고 규정지었다. 아울러 "정부의 임명총장 취임식을 강행하는 것은 국민에 의해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박근혜 정부에 굴종하는 행위이며 반시대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라고 범대위는 규탄했다.
대학 총장 직선제, 6·10 민주화 운동 산물지식과 지성의 상징인 상아탑 총장은 숱한 정부의 통제와 간섭으로 임명 또는 간선 등으로 이뤄져 오다 30년 전인 1987년 6·10 민중항쟁 이후 직선제로 전환됐다. 값진 민주화 운동의 산물 중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가의 총장 선출권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철저히 유린됐다. 방송사들과 더불어 속칭 낙하산 또는 블랙리스트가 대학 총장 임명제청에도 개입된 것이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대학을 평가해서 차등적으로 국고를 지원하는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이 그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대학은 국고지원을 끊고 마음에 드는 대학은 국고지원을 늘려주는 파렴치한 통제수단이 그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 방법은 가장 강력한 대학 길들이기로 통용된다.
어쩔 수 없이 대다수 대학들이 손을 들고 앞 다투어 총장 직선제를 내려놓았다. 부산대 등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학 길들이기 정책에 스스로 항복하고 만 셈이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헌법 제31조 4항을 청와대와 정부가 유린하고 대학들은 이에 동조하고 만 꼴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백년지대계인 교육에 개입하여 나라의 장래를 망친 사례를 곳곳에서 드러냈다. 대학 입시정책과 맞지 않은 고교 입시 및 교육정책, 잦은 대입제도 변경,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 거기에다 대학 총장의 임명제청 거부 등에서 잘 드러났다. 이것은 명백히 헌법 제31조 4항을 위반하는 것들이다.
아직도 총장 공석 수두룩...상아탑 적폐청산 첫걸음 지금도 전국 38개 국공립대 가운데 2년이 넘도록 총장 공석 중인 전주교대를 비롯한 공주대와 방송통신대를 비롯해 광주교대, 부산교대, 춘천교대 등 8개 대학은 총장이 공석인 상태다.
특히 공주대, 방송통신대, 전주교대 3개 대학은 총장 1순위 후보자들을 교육부가 명백한 사유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용제청을 거부해 소송에 소송이 거듭,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이들 해당 대학 총장 1순위 선정자들이 교육부의 임명제청을 받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박근혜 정부의 '교육계 블랙리스트'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무게를 더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와 정부가 스스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 헌법 제31조 4항을 유린한 중대 사안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만 전국 국공립대 10여 곳이 총장임용제청 과정에서 퇴짜를 맞는 등 지금도 제청이 이뤄지지 않은 대학들은 대학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 상아탑 총장 선정 과정에 적체된 적폐를 철저히 규명하고 청산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헌법에 명시된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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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총장 임명 청와대 개입 '적폐 중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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