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로 회귀시켰다"2014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보복정치이며 민주주의 파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유성호
이 같은 성향 분석에 비춰볼 때, 강일원 재판관은 논외로 하더라도, 진보성향으로 분류된 이정미 재판관이 '보수성향'의 재판관들처럼 진보당 해산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김이수 재판관의 '해산반대' 의견은 더욱 더 '소수편향적'인 의견으로 인식되었던 측면이 있다.
헌법재판에서 특정 재판관의 의견은 본인의 헌법적 소신에 더해, 여론의 동향, 임명권자의 의중, 사안의 정치적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요소를 콕 집어, 내놓은 의견의 배경을 짚어 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헌재 결정문의 김이수 재판관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의견이 단지 헌재가 보수일색으로 편향된 탓에 소수의견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그가 얼마나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헌법적 가치를 깊이 고민했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나아가 진보당 해산을 왜 반대하는지를 피력한 김이수의 재판관의 의견은 '민주주의 헌법'의 교본처럼 다가온다.
정당 해산의 기준 1 : 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가헌재 결정은 다수결에 따라 판단이 내려지지만 그 다수결이 곧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의 다수의견은 다른 시대와 상황을 만나면 소수의견이 될 수도 있고, 소수의견이 훗날 옳은 것으로 판명날 수도 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헌법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분명히 짚어 내고, 해당 사건에서 그 가치를 중심으로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해 나감으로써 바로 세울 수 있다.
수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더라도, 사실관계 규명과 사건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극명하게 갈릴 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력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진보당 해산 결정에서 다수의견(8)과 소수의견(1)은 바로 그 '팩트'와 '해석'의 차이로 인해 빚어진 것이었을 뿐, 수호해야 할 헌법적 가치에 대해서는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진보당 사건에 관한 '팩트'와 '해석'에 대한 김이수 재판관의 의견을 읽어 보면,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정당활동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소신이 짙게 깔려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된 '소수의견'이라는 이미지는 언론에 의해 덧씌워진 것일 뿐, 매우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헌법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8명이 합동으로 제시한 다수의견보다 김이수 재판관 혼자서 낸 의견이 분량이 더많은 180쪽이나 되는 것도 그의 '소수의견'에 무게감을 더한다.
진보당 사건의 시작은 2013년 5월 10일과 5월 12일 두차례 있었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전현직 당직자와 당원 모임에서 강사로 초빙된 당시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발단이 됐다. 회합이 있기 수개월 전부터 한반도에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를 발사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한국과 미국이 키리졸브 훈련에 돌입하자 북한이 '정전협정 폐기'를 선언하는 등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차였다.
이런 상황에서 130여명의 당원들이 모인 정세분석 강연에서 이석기 의원은 미국을 남북이 함께 싸워야 적대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는 데서 나아가, 미국과의 전쟁준비를 주장하였다. 이 회합과 발언을 이아무개씨가 국정원에 제보하면서 이석기 등 6명의 모임 주모자들이 내란선동, 내란음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다.
1심에서 이석기 의원은 혐의가 모두 인정돼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선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내란선동과 국보법 위반만 인정돼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이 선고됐다. 형사재판과 별개로 정부는 헌재에 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대법원 상고심을 한 달 앞둔 2014년 12월 19일 정당해산심판 선고를 하게 된다.
헌재가 진보당 해산심판을 하게 된 근거는 헌법 제8조4항,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는 조항이었다. 쟁점은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지 여부'였다.
헌재 심판의 초점은, 이석기 등의 회합참석자들의 활동과 발언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진보당 차원'의 활동으로 볼 수 있느냐 여부를 가리는데 집중되었다. 재판관 다수는 진보당 지도부와 중앙당이 이석기 등의 활동과 발언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고, 당차원에서 그들의 구명활동에 나선 점을 들어, 참석자 130명의 모임을 정당활동과 동일시하였고, 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활동을 했다고 보았다.
반면, 김이수 재판관은 회합을 가질 당시 이정희 대표 등 당지도부와 이석기 등 회합참석자들이 전혀 다른 정세인식과 대응을 했던 점을 들어, 정당활동으로 보기 어려운 경기도당의 일탈행동으로 보았다. 화해와 평화의 자주적 민족통일국가 건설과 한반도 비핵 평화체제 실현을 당강령에 명시했을 뿐 아니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정희 당대표가 긴급기자회견(2013.4.10.)을 통해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의 군사행동을 중단할 것과 한미일도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군사대응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거나 반전평화활동 지침을 내린 점 등을 고려할 때 이석기 등의 전쟁대비 발언과 행동은 당의 기본노선과는 배치되는 '일탈행동'이라는 것이 김 재판관의 판단이었다.
이석기 등의 발언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이 있다고 보지만, 그것은 당 전체의 기본노선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그런 활동을 옹호한 것도 아니어서 진보당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당 해산의 기준 2: 비례원칙의 충족 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