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공동대표
지유석
이지문 내부제보실천운동 대표는 1992년 3월 군 부재자 투표 과정에서 벌어진 부정선거 행위를 폭로한 주인공이다. 그는 내부고발 이후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진로 고민을 하다 반부패 운동,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활동에 매진해 왔다. 내부제보실천운동에서도 상임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모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먼저 내부고발자로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최순실 국정 농단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묻고 싶다. 최순실 국정 농단은 노승일·고영태 등 내부고발자들에 의해 일단이 드러났으니까 말이다. "이분들은 내부공익제보자다. 조직 내부에 있으면서 공익 차원에서 제보를 했으니까. 노승일·고영태는 최순실 국정 농단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가장 큰 파장을 던져준 내부고발로 황우석 박사의 배아 줄기세포 조작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그리고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등을 꼽는다."
- 내부고발이 엄청난 비리를 드러나게 했음에도 여전히 사회적 인식은 부정적이라는 판단이다. 노승일·고영태의 폭로 역시 진정성을 의심하는 눈초리들이 많다. "공공기관에서 공익제보 관련 강의를 자주 진행하는데, 노승일·고영태를 공익제보자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런 질문들은 시민들의 품고 있는 정서가 표출된 것으로 본다. '내부공익제보'는 좋고 나쁨을 떠나 조직의 내부자가 공익을 위해 제보하면 이뤄지는 것이다. 활동가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 사회엔 내부 제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팽배하다.
먼저 누군가 조직 내 비리를 고발하면 우리 사회는 '잘못을 고발하는 당신은 얼마나 깨끗하냐? 얼마나 바르게 살아왔냐?'며 고발자의 윤리 문제를 끄집어낸다. 다른 한편으로 '꼭 이런 걸 들춰내야 하냐?'는 식의 불만도 제기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월 육사생도 3명이 졸업을 하루 앞두고 성매매가 발각되면서 퇴교 당한 일이다.
이 사건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알려졌는데 이 사건을 전한 기사에 달린 댓글 대부분이 "성매매는 잘못이지만, 이를 들춰 장교 임관을 앞둔 생도의 인생을 망쳐야 하냐"는 식이었다. 우리 사회에 정이나 의리 문화가 강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지적했듯 부정적 인식은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다. 내부고발은 다른 게 아니다. 내가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있다 하더라도, 교도관들의 비리를 포착하면 고발할 수 있다. 즉, 누구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부고발로 제삼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인정을 해야 한다.
한편 조직은 내부고발로 치부가 드러나면, 드러난 치부를 부정하고 내부고발자가 문제 많은 사람이라고 낙인찍는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건, 내부고발자가 폭로한 내용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내용인지의 여부다.
내부고발이란 밖에서 모르는 조직 내부의 사정을 폭로하는 일이다.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나 비리를 제삼자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든 내부의 일에 연루되어야 알 수 있고, 내부고발자는 직·간접적으로 연루될 수밖엔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내부고발자가 비리에 연루됐다고 해서 고발 내용마저 부정하면 내부고발은 이뤄질 수 없다.
이 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노승일·고영태는 국정 농단과 일정 수준 연루돼 있고, 따라서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내부고발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 개별적인 일을 두고 비난하면 누구든 내부고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 최근 노승일 부장이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에게 피소 당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지금 고영태는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일들이 내부고발자에 가해지는 보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과거에 비해 세상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내가 고발에 나섰던 1992년에는 내부고발이라는 말도 없었고, 당연히 법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1990년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이병, 그리고 1992년 한준수 군수 등 초기 내부고발자들은 하나같이 구속, 파면, 수배생활 등의 고초를 겪었다.
물론 그때는 법도 없었지만 아직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다 보니 사회가 지금보다 강압적인 측면도 있었기에 내부고발자, 특히 정부·여당이 불편한 내부고발자에 대해 보호가 불가능했다. 현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여연대 시절 내부고발자 보호 입법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고 김대중 대통령 집권하면서 2002년부터 부패방지법(현 부패 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또 주무 국가기관으로서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도 출범해 부패행위 신고자 보호 및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어 2011년 9월부터는 공익 신고자 보호법이 시행되는 중이다. 분명 이들 법을 통해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원상회복, 보상 등 혜택을 입었다. 법 제정 이후 한계 등을 보완해 법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있다. 고영태·노승일 이 두 사람은 현재 법에 따른 부패행위 신고자나 공익신고자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더욱이 내부고발과 무관한 범죄행위까지 감면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 등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강력한 보호법이 요청된다."
정, 의리 중시하는 문화가 내부고발 어렵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