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 표지.
21세기북스
"사랑은 탄생 자체로 영원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했을 때 내 사랑은 더없이 가난했다. 가꾸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의 퇴색은 육체의 변화보다 더 빨리 온다. 사랑을 통해 삶의 유의미한 부분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느낌, 영혼의 고양감을 느낄 수 없게 될 때 사랑은 불편한 자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막막해진다...(중략)
...사랑을 통해 한 인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이유도 사랑이 몹시 수고로운 특별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몸과 마음의 노동을 어떻게 감당하며 성장시켰는지를 가늠해보면 인생이 보인다. 한 인간의 사랑의 궤적이 대개 인격의 궤적과 함께 하는 이유, 인간의 사랑이 특별한 이유다. 언제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생의 기적처럼, 언젠가 죽을지라도 오늘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세상을, 꽃피워간다."(16~17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속에서 지우려고만 했던 지난 사랑의 실패에 대해 정직한 자기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태해지다못해 사랑이 성장을 멈추었을 때 삶은 비루해졌다. 관계는 불편하고 답답해졌으며 하루하루를 적당히 잘 넘기는데 급급한 소모적인 일상이 펼쳐졌다. 몹시도 '특별하고 수고로운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사랑을 보면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 교감상태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이 된다. 그걸 일찍 깨달았더라면 좀 달랐을까, 생각해보지만 지금도 솔직히 자신은 없다.
작가는 사랑에 성공과 실패는 없다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평가된 사랑은 반드시 집착을 동반한다. 성공과 실패 대신 오직 탄생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사랑의 관계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값지게 만드는 훈련의 최고봉이다. 더 많이 훈련할수록 더 잘 사랑하게 된다"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새로운 배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헤어진 그 상대는 지금까지 내게 선생이었고, 내가 새로운 인생을 배울 수 있게 기회를 준 것이기도 하다. 이제 그 인연이 다했으니, 그를 떠나보내라. 보내고 나면 새로운 인연은 다시 찾아온다"고(58쪽) 이야기한다.
사랑의 탄생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아무리 초라하고 힘겨운 사랑도 사랑하므로 배우는 것이 있다면 실패라는 말로 규정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니 비로소 지난 사랑에 대해 예의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마음속 분노를 다스릴 방법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하나의 인연이 매듭지어지고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관계를 맺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힘도 지난 사랑의 관계속에서 학습되고 훈련된 것이리라. 그러니 끝난 사랑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사랑했으니 됐다' 그 뿐이다.
사랑 그 너머의 사랑을 꿈꾸며사랑은 새로운 관계성의 서사다. 사랑하지 않으면 관계의 확장은 힘들다. 이는 남녀간의 사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당신이 맺게 될 새로운 관계 혹은 관계의 재구성, 결혼의 진짜 의미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이것은 결혼 이후 낯선 곳에 정착해 살아가야 할 당신이 사랑을 좀 더 폭넓게 사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는 즐거움 중 하나는 연애의 뜨거움과 친밀한 관계 맺기 사이에서 장기간 서로에게 더 좋은 관계가 무엇인지 성찰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랑의 다른 얼굴인 이것은 우정의 능력이다. 사랑의 연대 중 가장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인 우정의 힘. 성별, 나이, 계층, 인종, 민족, 국가와 상관없이 더 다양한 우정의 관계들이 생길수록 인생은 풍요로워지고 세상은 평화로워진다."(188쪽)인간관계가 대체로 그렇다.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고 격려하지 못하는 관계는 오래 못간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약육강식의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남의 성장이 곧 나의 추락이 되는 공포 때문에 삶이 고통스럽다. 흔쾌하게 응원하지 못하니 외로움만 깊어간다.
사랑을 뇌하수체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의 작용이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 호르몬이 왜 분비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체는 호르몬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나의 삶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자주와 자립을 이루지 못한다면 사랑을 하는 것도,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렵다. 사랑을 하되 사랑이라는 감정상태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인연은 끈끈하되 각자는 또한 자유로워야 한다.
작가는 "좋은 사랑은 인간의 성장에 깊이 관여한다"며 "사랑에는 분명 급과 질이 있다. 점점 더 수준을 높여가기 위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어쩌면 유일하게 사랑에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내내 청춘이다"라고(199쪽) 했다.
그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 늘 공부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사람들에겐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여전히 성장 중인 생기가 있다. 더 이상 성장하기를 멈춘 채 과거에 고착된 사람들은 젊어서도 이미 늙은 것"이라며 "평생 배우고자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성장판을 유지하며 삶에 생기를 평생토록 구현하겠다는 의지다. 중년을 넘어서 노년에 이를수록 공부하는 삶이 중요해진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청춘이었던 스승들이 우리에겐 많다"고(200쪽) 충고한다.
육체는 늙되 정신은 늙지 말아야 한다. 주변을 깊이 사랑할수록 삶은 더 푸르러진다. 사랑은 청춘이다. 이제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로운 문 앞에 선 당신, 언제나 청춘이기를. 깊이 사랑함으로써 인격의 완성과 삶의 진보를 성취해가기를. 우정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내가 성숙해지는 만큼 성숙한 관계들이 새롭게 나타난다. 사랑하여 스스로 충만한 에너지가 사랑의 첫 걸음이다.사랑의 순간들을 내가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에 좀 더 집중하자.스스로 행복하지 못하면 누구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스스로 구원할수 없다면 누구도 구원할수 없다.스스로 사랑할 수 없으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그러니 자기 자신부터 사랑할 것!" (260~261쪽)
사랑, 어쩌면 그게 전부 - 모든 사랑의 순간마다 함께할 마흔네 가지 사랑 이야기
김선우 지음,
21세기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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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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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앞둔 당신이 봐야 할 마흔네 가지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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