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지구사> 책 표지
휴머니스트
도대체 이런 술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한 번 궁금한 게 생기면 끝까지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기어이 동네 도서관을 찾아 위스키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위스키의 지구사> 얘기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요약해 위스키의 역사를 톺아보는 책이다. 위스키 제조 과정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긴 하지만, 내용의 8할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그리고 한국 등 전세계 각국에서의 위스키에 대한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술의 제조 공정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위스키가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책에 의하면 위스키는 2000년 전 고대 그리스나 서아시아에서 증류과정을 발견하며 시작됐다는 설이 있단다. 이후 아일랜드의 기독교 선교사나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인이 유럽에 전파하고, 다시 연금술사나 성직자들이 증류를 실험하는 과정에서 위스키가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고대 이집트인과 히브리인이 곡물로 보리술을 만들었고 다양한 제조법을 실험해 만들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유럽인이 서아시아에서 보리술 제조법을 전수받은 것인지 스스로 익힌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기원전 3000년경 영국에서 보리술 양조를 했다는 증거가 있다. 하지만 위스키 제조는 그 후로도 수세기가 지나 발효와 증류 기술을 결합하는 방법을 알아낸 뒤에 시작되었다." - p.58~59
그렇다면 중세 유럽인들은 위스키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3세기 스페인의 의사 아르날두스 데 비야 노바(1235~1313)는 위스키를 가리켜 "이 생명의 물은 마시면 원기를 북돋아주고, 과하게 폭발하게 만들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황홀경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또 아일랜드 출신의 연금술사이자 작가인 리처드 스태니허스트(1547~1618)는 "적당히 마시면 노화가 늦춰지고 젋음을 강화시켜주며 가래가 줄어들고 우울증이 없어진다. 수사슴 고기의 맛을 돋우고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며 기분 전환을 시켜준다"고도 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위스키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생명의 물'이었다.
순탄치 않았던 위스키 과세의 역사한편 책의 저자는 위스키 시장이 발전해감에 따라 술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거나 '금주령'을 내림으로써 생산을 통제하고자 했던 각국 정부들과 이에 맞선 제조업자들과의 갈등 양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위스키의 역사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세금 징수원'들과 증류업자들의 에피소드는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어 흥미롭기까지 하다.
19세기 영국 스코틀랜드에는 위스키 세금 징수원들이 증류소마다 배치되어 증류기에 들어가는 술덧의 양과 생산되는 술의 양을 측정해 세금을 매겼다고 한다. 그러자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불법적으로 위스키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세금 징수원을 피해 증류기들을 다리 밑, 집안 마룻바닥 밑, 마을 시계탑 등에 숨겨놓은 것이다. 심지어 세금 징수원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위스키 제조업자들 입장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세금 징수원들의 존재는 눈엣가시였을 게 뻔하다. 그러다보니 둘 사이에 티격태격하는 일도 잦았지만, 서로 담합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징수원이 실제 생산한 위스키의 양보다 줄여서 기록하고 세금을 낮게 책정해주는 대신, 징수원이 필요량 이상의 위스키를 담아가도 증류업자가 못 본 척 해준 것이다.
반면에 징수원이 증류업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할 경우, 증류업자들은 새벽에 증류작업을 하는 식으로 징수원에게 보복했다. 작업을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는 징수원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괴롭힌 것이다. 이러한 영국의 세금 징수원 제도는 1983년에 이르러서야 폐지됐다. 오랜 시간 티격태격하며 함께 해왔던 그들은 헤어질 때 후련했을까? 아니면 서운했을까?
19세기 개항과 함께 시작된 한국의 위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