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표지
창비
이 책이 32년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2017년의 촛불시민에게 찾아왔습니다. 저자 중 한 명인 이재의 님이 책의 말미에 쓴 짧은 글에 이 책의 역사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어떤 난관을 뚫고 초판이 세상에 나왔는지를 알게 되니 더 숙연해집니다. 이재의 님이 밝히는 이번 개정판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넘어넘어> 초판이 피해자인 광주시민의 증언과 기록만을 토대로 집필된 데 반해, 개정판은 그 이후 밝혀진 '계엄군의 군사작전' 내용과 5.18 재판 결과를 반영하여 '역사적/법률적 성격'을 명확히 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5.18을 현장에서 목격한 내외신 기자들의 객관적인 증언도 실었다. <넘어넘어> 초판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인식과 정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개정판에서는 초판과 달리 증언자들의 실명을 밝혔다. 다만 계엄군 관계자 가운데 하급 지휘관(대위, 중대장 이하)이나, 사병들의 경우 익명으로 처리하였다. 법률적으로 처벌받지 않았어도 현장에서 진압작전을 지휘한 책임이 분명하다고 여겨지는 대대장들의 이름은 실명으로 밝혔다."(584쪽)지난 두 번의 정부가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지독히도 훼손하고 싶어했던 5.18의 민주적 가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저자 황석영 님이 쓴 것처럼 옛 권위주의 체제의 기득권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던 '타협적 민주화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기 위해서도 1980년 광주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촛불 혁명을 이뤄가고 있는 우리는 진실한 5.18의 기록을 고통스럽지만 다시 한번 마주하며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 석좌교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이 책을 '지금까지 나온 광주항쟁에 관한 여러 기록 가운데 가장 세밀하고 고전적인 저술'이라 평가합니다. 그는 '광주의 비극이 서울과 워싱턴 두 나라 정치권력의 합동작품이었다'는 점을 고통스럽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커밍스 교수는 미국이 한국의 군사독재자들을 수십 년간 지원한 결과로 광주항쟁이 빚어졌음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민주의 가치를 피로서 지켜온 대한민국 국민에 경의를 표합니다.
왜 광주였는가?
1980년 광주의 비극에 도화선이 된 사건은 이전 해 유신독재에 항거해 일어났던 '부마항쟁'과 이후 이어진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이었습니다. 책의 시작 부분엔 1979년 10월 박정희의 죽음 이후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의 부상 배경과 과정, 그리고 5월 민중항쟁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사건들이 압축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당시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열망에 비해 이 열기를 담아낼 만큼 준비되지 못했던 민주운동 진영과 조직적이고 공격적으로 권력 찬탈을 준비했던 신군부의 모습이 대조되어 안타까웠습니다.
5월 13~14일 전국의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입니다. 당시 군부는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활동 및 비정규전 위협이 예산된다'는 이유를 대며 소요 진압을 위해 군대 동원을 준비합니다. 치열해지던 학생시위 속에 서울에선 총학생회 대표들이 격론 끝에 시국 추이를 관망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시위를 중단하기로 합니다. 일명 '서울역 회군'을 결정합니다.
이와는 달리 광주에선 5월 16일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횃불시위'로 민주화대성회가 개최됩니다. 광주/전남 지역의 반응을 주시하던 신군부는 군대를 배치해 학생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이 연행됨에 따라 총학생회 지도부는 힘을 잃게 되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저항의 불길은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5월 18일 시위 학생들이 공수부대와 대치하다 공수대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폭력을 가한 것이 항쟁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학생시위에서 민중항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