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정치학>, 조기숙, 2017
위즈덤하우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친노', 즉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로 구성된 이들 유권층은 진보 언론에 대해 이전과 달리 깊은 불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왕따의 정치학>의 인식처럼, 언론이 친노계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에 대해서 불공정한 잣대를 드리운다는 것이다. 본 저서에서도 제기되는 주된 비판점들은 다음과 같다.
2012년과 2017년의 대선 국면에서 '진보'와 성향상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는 안철수에 대해서는 호의적 보도를 주로 내면서 문재인에 대해서는 분열의 정치라는 프레임을 씌워놓았다는 것, 친문을 친박과 동일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프레이밍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한 것 그리고 반문의 집단/해당행위에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친노, 혹은 친문의 모임에 대해서는 과장, 허위 보도까지도 일삼는 모습을 보인 것 등이다. 개헌론 띄우기도 하나의 예시로 제시된다.
조 교수는 이러한 보도 양상이 차별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기원했다고 추측한다. 그 근원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한다. 진보 언론인들의 과도한 엘리티시즘, 킹메이커가 되고자 하는 열정, 양심 결벽증, 그리고 무엇보다 기존의 진보와 참여정부의 문화적 차이까지. 특히 마지막 요인의 경우, 저자는 경제적 이슈와 민주화에 집중한 기존의 진보를 구좌파, 탈권위와 사회적 진보, 그리고 개방에 적극적인 참여계를 신좌파로 명명하며 양자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다.
여기에 덧붙여 진보 언론사들의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정상태가 대형 보수 언론의 논조나 프레이밍을 일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뭉쳐 결국 '진보 언론' 임에도 문재인 등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 편파적 논조를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이 조기숙 교수의 판단이다.
'진보'와 '친노'의 분리? 반만 정답이다상기한 요인들에서처럼 기존의 진보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친노 사이의 구별점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차이의 존재가 양자 사이의 관계를 지금처럼 악화시킬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그렇기에 양자 사이의 분열은 절반만이 정답이다.
조 교수는 호남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다선의원들이 의도적으로 호남 홀대론을 퍼뜨렸다고 보았다. 호남과 친노의 결합을 통한 집권을 우려하는 보수 언론과 정치권이 가담해 만들어낸 주장을 야권 일각에서 받아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참여정부 호남 차별론에 많은 유권자들이 사실관계를 깊이 따져보기란 어려웠다. 결국 이로 인한 분열과 논쟁은 지난 대선에 이어 2016년 총선, 그리고 이번 대선국면까지도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보수가 재집권하고 호남 다선의원들이 선수를 쉽게 추가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번 5월 대선에서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막판으로 가면서 더욱 당 내 일체감을 키우는 데에 성공했고 호남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기에 온라인을 중심으로 싸움의 불씨가 남아있다. 이것을 해결하는 키는 문재인을 비롯한 정치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지지자라는 당사자들에게 존재한다.
<왕따의 정치학>은 출간 당시 문재인 후보를 방어하는 자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다. 그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작정 현재 진보언론에 대한 불신과 문재인 지키기라는 자발적 행동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공격하는 데에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친노와 기존의 진보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입장이 다른지를 이해하고 서로 다가가려는 데에 발판을 마련해 나가기 위해, 그리고 기존 언론에서 다루어주지 않는 '억울한'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왕따의 정치학>은 의미가 있는 도서가 될 것이다.
왕따의 정치학 - 왜 진보 언론조차 노무현·문재인을 공격하는가?
조기숙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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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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