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문> 표지
이야기꽃
그런데 이렇게 문의 모습이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가지는 '문'에 대한 동일한 기대가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떤 문을 보든 문이 열리면 펼쳐질 그 공간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다를 것이라 것입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지친 하루를 쉴 편안한 집이 있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 험한 세상살이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길고 긴 취준생 시절을 넘어 회사의 커다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탄탄대로의 나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게 되지요. 굳게 닫힌 교도소 문이 열리면 죄값을 치르고 이제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됩니다. 이렇게 '문'은 지금과 다른 어떤 곳을 '꿈'꾸게 합니다.
이지현의 <문>은 이런 문들을 방긋이 열어 보여줍니다. 오래 열지 않아 거미줄이 가득 쳐진 문, 조금 두려워지기도 하지만 꼭 열어보고 싶은 그 문을 삐끄덕 열어줍니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면 거리에는 모두 흑백 사람들만 분주히 움직입니다. 무엇에 화가 났는지 잔뜩 서로를 경계하며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만 같은 표정들로 거리를 걷습니다. 그 무심한 거리에 빨간 날개를 파닥이며 열심히 날아가는 모기만한 녀석이 있습니다. 혼자 색깔을 가지고 있어 흑백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작지만 눈에 쏙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