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루 대표 (가운데)와 함께 문래동 탐색중에서
이주민방송(MWTV)
"일본에서의 초청자라고 해도 저 말고는 다 거의 이주 배경을 가진 연구자나 저널리스트 등이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우리 동네 와카바초에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고요. 우리도 다문화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니 여기서 만난 다양한 아시아 분들의 관련 작품을 올해 우리 영화제에서 상영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네트워크 작업 등도 직접 할 수 있게 돼 좋았습니다."주루 대표는 이번 워크숍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실은 주루 대표와 MC NAM은 함께 식사하면서 벌써 10년가량 전에 발표한 <나의 애국가>라는 대표곡을 아직도 계속 해야 하며, 그 당시와 다른 자신의 다른 면도 보여주고 싶은데 그 노래의 이미지를 항상 기대하는 대중 앞에 서야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단다.
그러나 벨 히로키(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연구자이며, 안산시에서의 연구경험도 있음)씨는 "지금의 MC NAM에게는 이제 과거의 노래였더라도 지금도 그 노래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을 수가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나는 아들 생각도 났다. 아들이 중학생 시절, 엄마가 일본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된 한 친구가 "야, 일본 놈!"라고 아들에게 욕을 해 싸움이 벌어졌다. 지금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내가 틀어준 <나의 애국가>를 말 없이 가만히 듣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MC NAM에게 이번 워크숍의 소감을 물어봤다. 그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오늘은 흥미진진한 여러 빛깔의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다양한 발표도 듣고 마음이 통하는 시간이었어요. 모이는 것만으로 화학 반응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하루였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모두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고, 또 나도 모두의 노래를 흡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 것들을 잘 받아들여서 또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고 싶어요!"작년의 여름 방학 때, 우리 막내 딸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때 딸은 체험입학제도로 나의 모교이기도 했던 지역 초등학교 1주일만 등교하게 됐다. 당시 언어적인 측면에서 적지 않게 걱정이 컸다. 그 학교에 다니기 전에 <요코하마 와카바초 다문화영화제>를 함께 찾게 되면서 주루 대표의 친한 동네 언니라는 경기도 출신의 어떤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 분도 일본에서 딸을 키우면서 한국어 가르치는데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내 딸에게 "이제 엄마 나라 말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열심히 해보자!"라면서 격려해줬다. 덕분에 겁이 많았던 우리 딸도 용기를 내서 학교에 잘 다니며, 무사히 짧은 체험을 마쳤다.
체험을 마치던 날, 담임 선생님과 동창생들이 편지집과 기념사진을 출력해 코팅까지 해 보내줬다. 딸이 무척 기뻐했던 게 기억이 났다. 인천에 돌아와도 한동안 친구들에게 일본에서 만났던 친구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름도 알려주고 자랑한 듯 이야기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 소극적인 성격임에도 자신감을 얻은 듯해 보여 보기 좋았다.
그런 경험이나 또 이번 워크숍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다양한 만남을 통해 변화갈 수 있는 자유로운 영감을 받아 새로운 문화 예술을 창작하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우리 이주배경 청소년, 청년들에게 그런 경험의 기회를 주어 줄수 있도록, 내년 워크숍을 기대해본다.
에스니시티즈: 다양성을 포용하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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