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가 만든 ‘세월호 걸개그림 포토존 사진 공모전’ 포스터.
윤근혁
천과 물감을 사고 세탁소 공임비를 내야 한다. 50여만 원이 들었다. 세월호 도안공모전 수상자에겐 문화상품권 1만 원, 우수참여 학급엔 2000원짜리 추모 팔찌 27개, 걸개그림 포토존 수상자에겐 상품으로 '초코파이'를 줘야 한다.
이 돈을 모두 학생회가 부담했다. 학생참여예산제에 따라 떳떳하게 쓸 수 있는 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에 '돈을 지원해 달라'고 사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 학교에서 학생회 업무를 담당하는 장주연 교사는 "이번 세월호 행사를 할 때도 학생회에서 세탁소 등에 '돈을 내라'고 하면 제가 지출을 해왔다"면서 "학생회 임원들이 회의를 통해 지출 계획을 세우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잘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냥 도와주는 식으로 일하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학생회 사업 속엔 장 교사의 보이지 않는 지도가 스며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참여예산제가 학생회의 자발성을 높여주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난 4월 4일, 학생회 임원 13명이 학생회의실에 모였다. 제2차 집행부회의를 열기 위해서다. 이번 회의의 안건은 '2017학년도 학생참여예산 사용 계획서 작성하기'였다.
이날 회의록을 살펴보니 이 학교 학생회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주는 200만원 돈의 사용처를 대략 잡아놓았다.
"학생회 공약사업에 따른 연습실 벽면 거울 3개 구입과 설치: 100만원, 우리의 소원은 통일 사업 부스 운영비: 15만원, 선유창업마당 학생회 부스 운영비: 25만원, 선유기네스 행사준비물 4만원…"모두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다. 학생회 사업이기 때문에 학생참여예산으로 쓰겠다는 것이리라.
10여 년 전만해도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회의 역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용병'학생회라는 것이다. 교장과 부장교사가 학생들을 동원할 일이 있으면 학생회 간부들에게 슬쩍 지시했다. 학생회 간부들은 학생들 '꼬시기'에 나섰다. 칭찬과 상장은 이런 활동에 대한 특혜였다. 학생회가 이른바 대리통치기구로 이용당한 셈이다.
하지만 혁신교육의 시대, 이런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학생회가 예산운용권까지 갖게 된 지금은 '용병'학생회는 박물관 신세가 되었다.
'더불어 숲이 되는 학교'를 만들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