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사랑
떴다 떴다 비행기! 언제 뜨나요?새벽 4시 반. 삼십 분을 눈을 감다 뜨고는 출발 준비를 했다.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려면 카트만두 동쪽에 위치한 루크라라는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트레킹 기간 동안 필요 없는 캐리어를 카운터에 맡기고 어제 만난 쿨냄퍼 청년과 빠이빠이를 했다. 내가 다시 돌아올 테니 나를 잊지 말라고 당부를 했더니 생글생글 웃는다.
어제 미리 택시 불러달라고 하기를 잘했다. 이 꼭두새벽에 택시를 잡는다고 설칠 수야 없지. 맨날 욕만 주워 먹던 과거의 나를 소환해 칭찬을 하며 준비된 택시를 탔다. 어제 분명 퇴근 시간의 트래픽에도 역주행과 차선 바꾸기, 빵빵대기로 레이싱을 하며 30분이나 걸린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했다(네팔 택시기사분들, 카레이서예요. 역주행할 때도 속도를 안 줄여요. 기사님들, 제발 제 목숨 좀.. 덜덜덜.).
도착하니 아직 공항은 문을 열지도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들어간 공항은 어느 시골의 시외버스터미널 같은 느낌이다. 잡화와 주전부리를 파는 매점 하나, 화장실 하나, 대기할 의자 사이로 식수대와 휴지통이 있다. 중간에 비치된 고해상도의 평면 LG 모니터가 이질적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자 조그만 공항에 트레커들과 현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해졌다.
'날이 맑으니 연착되지는 않겠군.'이런 생각은 경기도 오산(오모나 죄송해요. 개그가 경기도 구리네요. 하하). 전광판에는 '카트만두 날씨에 따라 비행기가 연착될 수 있다'라는 글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착을 밥 퍼먹듯 하는 중국 항공을 타고 왔다. 연착으로 눈물 콧물을 뽑아마셨는데 카트만두 날씨쯤이야 가뿐히 기다려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자리를 잡고 기다림에 지루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기다리고, 졸아도 비행기가 뜰 것이라는 안내는 없었다. 가뿐히 기다릴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새벽 다섯시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오후 한시에 비행기가 이륙했다. 오마이지오디. 이건 뭐, 취학아동들이 등교해 학교에서 칠판을 보고 졸다가 맛없는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친구들과 하굣길 컵 떡볶이 한 잔 때리고 집에 와서 엄마가 하라는 숙제는 잠시 접어두고 게임 한판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역정을 내봤자 내 손해므로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길 위의 시간을 즐거워 해야지. 그래야지 암. 그래도 연착 시간이 길어지니 지친다! 지쳐! (지친다고! 이 카악트만두 날씨 놈들! 나는 삼십분 잤단 말이다! 이럴 거였으면 더 잤을 텐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행시간은 길지 않았다. 30분 타려고 8시간을 기다렸다니 자괴감이 들었지만 며칠 동안 비행기가 안 뜨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니 무사히 루크라 공항에 도착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뭔가 다중인격의 글쓰기인 듯 하오나 이때의 정신 상태는 다중이 만중이었습니다. ᅲᅲ).
잠시 루크라 공항에 대해 설명하자면, 1965년 건설된 루크라 공항은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그의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를 기념해 '텐징&힐러리 공항'이라고도 불린다. 해발고도 2843m에 있는 루크라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장 위험한 공항으로 알려져 있다.
공항의 활주로는 산을 깎아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짧다. 그럼에도 이착륙이 가능한 이유는 활주로가 경사져 있기 때문인데, 비행기가 착륙할 때는 오르막을 이용해 속도를 줄이고 이륙시에는 비탈을 이용해 더 빨리 속도를 낸다고 한다. 해서 루크라 공항을 이착륙하는 조종사들은 경험이 많고 각종 변수에 대한 대처능력이 필요하다.
우리 비행기 조종사 아저씨는 경험이 많다고 했다. 그랬다. 조종사 아저씨는 경험도 장난기도 많았다. 루크라 공항으로 가는 산등성이를 날아가는 동안 뒤를 돌아보며 한 손으로 밖을 보라고 율동을 해줬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지만 한 손 운전이라니..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두근대 죽을 것만 같았다.
사실 조종사 아저씨가 이랬던 이유는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맥 사이를 경비행기로 날아가며 히말라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 얼마나 있을까. 비행기 창문은 새똥으로 칠갑을 했지만 장관은 장관이다. 참고로 루크라로 갈 때는 왼쪽, 카트만두로 올 때는 오른쪽에 앉아야 산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텐징 힐러리공항 도착.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