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체>
사계절
<합체>의 작가 박지리.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작가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으며, 이전에 작품을 발표해 본 적도 없는 20대 젊은 작가였다. 그런 그가 2010년 한국 청소년문학을 개척한 사계절출판사에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합체>를 출간한다. 갑작스러운 신예의 등장이었다.
<합체>의 주인공은 '키가 작은' 고3 쌍둥이 형제인 '합'과 '체'다. 이들은 키가 크는 게 최대 소원이다. 어느날 한 형제가 동네 약수터에서 흰 도복에 흰 고무신을 신은 자칭 '계도사'를 만나 키가 크는 비밀스러운 방법을 전수받는다.
결국, 형제는 33일 동안 키 크는 수련을 하기 위해 "닭을 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곳, 천지의 미물이 거물로 거듭나고, 팔푼이가 십분이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곳, 뜻만 있으면 백치가 신선이 될 수 있는 곳"(112쪽)인 계룡산의 '형제 동굴'을 찾아간다.
이 작품은 '코믹, 무협, 성장소설의 합체'로, 누구나 겪는 작은 마음의 콤플렉스를 익살스럽고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덕분에 재미나게 술술 읽힌다.
그러나 코믹함 뒤에 숨어 있는 비유를 읽을 수 있는 만큼 이 작품의 의미가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주인공 형제가 진정으로 훌쩍 크게 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은 '계도사'가 아니다.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서커스 공놀이'를 하는 '우리들의 난쟁이 아버지'가 성장의 비법을 슬그머니 흘린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합, 체야. 좋은 공이 가져야 할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다, 바로 공의 탄력도란다.""탄력도? 그게 뭔데요?""(…) 실수로 잘못 쏜 공이 땅에 떨어지더라도 그대로 깨지지 않고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을 말한단다."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이요?""그래, 그래서 쇠공이나 유리공 같은 건 아무리 강하고 예뻐도 절대 좋은 공이 될 수 없는 거지. 걔네들은 쏘기도 어렵지만 일단 쏴도 다시 튀어 오르지 않고 땅에 박히거나 깨져 버리니까."(<합체> 65쪽)그렇지만 이 진정한 비법을 듣고도 여전히 주인공은 "난쟁이는 큰 공 좀 쏘아 올리면 안 돼?"(82쪽)라고 생각한다. '다시 튀어 오르는 공'이 아닌,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부러워할 만한 '큰 공'을 쏘고 싶어한다.
<합체>의 아버지는 분명 '난쏘공'을 연상시킨다.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난쟁이 아버지는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소외된 도시 빈민의 삶을 통해 사회 현실을 고발했다. 반면 <합체>의 난쟁이 아버지는 새로운 비유를 통해 한없이 쪼그라든 우리에게 다시 튀어 오를 수 있는 성장의 메시지를 전한다.
막을 수 없는 '존재의 구멍'을 탐구하는 <맨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