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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던 날, 이땅에 발 디딜 너의 발 조리원에서 고군분투할 때. 7개월이 흘러 마침내 새 대통령을 맞이했다 ⓒ 박진희
네가 태어났던 달인 2016년 10월의 어느날, 네가 태어나 살아갈 땅에 무척 어지러운 일들이 있었단다.
당시 엄마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조리원에서 모유를 잘 돌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였어. 너라는 존재와 서로 적응하기 위해 진땀 빼는 게 전부였던 시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8시만 되면 유축하면서 뉴스를 챙겨보았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고, 국민들이 분노했고,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새로운 대통령을 다시 뽑는데까지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단다. 즐겨보는 뉴스의 슬로건처럼, '시민이 만든 위대한 여정'이었지.
엄마가 한국 나이로 서른여덟이니까, 지금까지 총 네 번의 대통령을 뽑았다. 하지만 이번에 난생 처음으로 '1'이라는 숫자에 기표를 해보았단다. 엄마는 평생 그 번호에 손을 못대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번호의 사람이 크게 이겼단다. 그래서 임신과 수유로 인해 2년동안 참아왔던 맥주에 손을 댔다.(무알콜이니 이해해주렴) 축배를 들며 기쁨에 겨울 줄 알았는데, 너를 재우고 한동안 잠을 이루질 못했어.
10년만에 내가 선택한 사람이 대통령 된 기쁨보다 나쁜 짓을 저지른 집단의 사람이 다시 집권을 하지 않은 안도가 훨씬 더 컸기 때문인 것 같아.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엄마는 고향에서 종종 정치적인 이견으로 어른들과 대화도 해보고, 설득도 해보고 싸워보기도 했어. 엄마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유일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서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어. 왜 지지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혼을 내시니,
나중엔 그냥 포기하게 되고, 한 귀로 듣고 흘리려 애쓰게 되고, 입을 다물게 되더라.
그러곤 속으로만 어른들을 불신하고 미워하게 되었어. 젊은이들이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데,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다음세대를 전혀 생각지 않는다고 욕하게 되었어.
경험과 연륜으로 "나이 들면 다 알게 될 거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 생각이 옳았다고 깨달을 거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편견과 고집을 꺾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이번 선거 결과만 봐도 그래.
20, 30, 40, 심지어 50대까지 다 같은 마음인데, 그 이상만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걸 보고
보라고, 이러고도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투표한 거냐 소리치고 싶었어.
어젯밤 엄마가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1등으로 크게 이긴 당선자보다 끝내 2등까지 쫓아올라온, 최악으로 생각했던 사람 때문일거야.
그 사람이 2등이 되는 걸 보면서 전쟁을 겪지 않은 내가, 독재를 겪지 않는 내가, 그 시대를 겪지 않은 내가 절대로 이해 못하는 뭔가가 있구나, 생각하기로 했어.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20여년 뒤쯤엔 엄마는 60대가 될 거고, 그때도 대통령 선거를 할 거잖아? 그때도 지금의 어른처럼 네가 최악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엄마가 지지하게 될까? 엄마도 편견과 아집으로 "네가 몰라서, 네가 무지해서 그러는데"라고 말하게 될까?
그게 너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엄마는 네가 지지하는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랄게. 행여 정치적 의견이 달라지고, 네 생각이 터무니 없다고 느껴져도 너와 대화하는 걸, 네 생각을 들어주는 걸 즐겨하는 엄마가 될게. 네가 나를 설득하려 애쓰는 모습을 최선으로 받아주고, 설득 당해줄게. 그땐 엄마보다 네가 훨씬 더 오래 그 세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네가 살아갈 세상이니까.
그러니 행여 엄마가 너와 정치적 이견을 보이더라도 노인이 된 엄마를 설득하는 일을, 젊은이가 된 네가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 앞에서 입을 다물고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행여 20년 뒤에 내 모습이 달라질까 두려워 미리 써놓으며,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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