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옻을 바른 평상이 반질반질합니다.
최종규
자르다 : 3. 남의 요구를 야무지게 거절하다거절하다(拒絶-) : 상대편의 요구, 제안, 선물, 부탁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다물리치다 : 3. 거절하여 받아들이지 아니하다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자르다'를 '거절하다'로 풀이하고, '거절하다'를 '물리치다'로 풀이하는데, '물리치다'는 다시 '거절하다'로 풀이합니다. 돌고 도는 뜻풀이랍니다. 사람들은 "딱 잘라 거절하지 말고" 같은 말을 흔히 쓰기도 하는데, 이 말씨는 겹말이에요. '거절하다'라는 한자말은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만, 이 한자말이 어떤 뜻인지 찬찬히 안 살핀 탓에 겹말을 쓰고 말아요.
더 헤아릴 수 있다면 "딱 자르지 말고"나 "딱 물리치지 말고"처럼 수수하게 쓸 만합니다. "손사래를 치지 말고"나 "고개를 젓지 말고"라 해 볼 수 있어요. 뜻하고 느낌을 고이 살펴서 수수하게 쓰면 겹말이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른도 아이도 곧장 알아들을 수 있어요.
'추가(追加)'라는 한자말을 살펴봅니다. "나중에 더 보탬"을 뜻하고, 한국말사전에는 "≒ 추증(追增)"처럼 비슷한말을 싣습니다. '추증'은 "= 추가(追加)"로 풀이합니다. '추증'은 굳이 쓸 일이 없겠지요. "더 보탬"을 뜻한다는 '추가'이니 "추가로 더 주다"처럼 말하면 겹말이에요. 쉽고 수수하게 "더 주다"라고 하면 그만입니다.
한국말사전은 '추증' 같은 한자말을 괜히 실어서 한자말 숫자를 불립니다. 이밖에도 한국말사전에 '추가(秋稼)'라는 한자말을 "[농업] = 추수(秋收)"로 풀이하며 실어요. '가을걷이'라는 낱말이 있는데 구태여 '추가·추수'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할는지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안 써도 되거나 쓸 만한 자리가 없는 애먼 한자말을 사전에 왜 실었는지를 곰곰이 따져야지 싶어요.
우리는 한국말사전에 토박이말이 적고 한자말이 많은 듯 쉽게 생각하지만, 이는 썩 올바르지 않습니다. 막상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살피면 '追增'이나 '秋稼'처럼 쓰임새조차 없는 한자말이 대단히 많습니다. '구조'라고 하면 어떤 한자말이 떠오를까요? 한국말사전에는 '얼개'를 뜻하는 '構造'나 '살리기'를 뜻하는 '救助'뿐 아니라 '九條·久阻·口調·狗蚤·救助·舅祖·鉤爪' 같은 한자말을 실어요. 이런 '구조'를 듣거나 보거나 쓸 일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狗蚤'는 '개벼룩'이라는데, '개벼룩'이라 안 하고 '구조'라 할 까닭이 없어요. '鉤爪'는 '갈고랑이'라는데, '갈고랑이'라 안 하고 '구조'라 할 까닭도 없습니다.
한국말을 담는 그릇인 사전이 제구실을 안 하고 엉뚱한 한자말을 마구 싣느라, 정작 시골말을 찬찬히 살펴서 알려주는 일은 얼마 못합니다. 마치 한국말이라는 보금자리에 한자로 된 낱말이 대단히 많은 듯 부풀리는 꼴이 되기까지 합니다. 사전이나 교과서는 표준 서울말로 적어야 좋다고 할 터이나, 고장마다 다 다르면서 즐겁게 쓰는 수많은 말을 고루 살펴서 갈무리하지 않는다면 한국말은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고장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을 북돋우자면, 서울에서는 시골말을 가르쳐 주고, 전라도에서는 경상말을 가르쳐 주며, 경상도에서는 전라말을 가르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먼저 말부터 즐겁게 살피고 알 적에 서로 마음을 넉넉히 나누는 길을 틀 테니까요. 이제는 '서울 표준말'을 내려놓고 '서로 아끼며 싱그러이 숨쉬는 오래되고 새로운 말'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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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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