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0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경남도청 앞 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준표 지사를 규탄했다.
윤성효
홍 후보가 '강성 노조' 발언을 한 저의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보수언론과 재계가 주장해온 '강성 노조 프레임'으로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노-노 갈등'을 부추겨 반사이득을 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에게 연일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장면은 진주의료원 사태의 데자뷔다. 홍 후보가 우리나라의 노동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고 있는 것도 아주 흡사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2015년 기준으로 10.2%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인 27.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29개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낮은 수치다.
노조 조직률이 낮다는 것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권리 밖에 있다는 뜻이며,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정치·사회적 권리가 그만큼 취약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노동자의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사실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의 박형준 연구위원이 지난 2014년 12월 발표한 '한국 사회경제체제의 역사적 경로 변경을 위한 좌표 설정'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높을수록 경제적 불평등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연구결과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5년 9월 2일 <뉴스타파>는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수록 중산층이 증가해 빈부격차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를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연구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하락할 때 상승한 것은 상위 10%의 소득이었다. 이같은 연구 결과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가 강성 귀족노조 때문이라는 홍 후보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한겨레>가 수출입은행의 '2015년 해외직접투자 동향'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이 투자잔액이 100만 달러를 넘는 현지법인 6천 개를 대상으로 투자목적을 조사한 결과, '현지시장 진출' 2797개(46.4%), '수출촉진' 1403개(23.3%), '저임금 활용' 818개(13.6%)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결과는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는 이유가 강성 귀족노조 때문이 아니라, 현지 내수시장 진출이 주목적임을 말해준다.
기업의 국내 투자 회피가 강성 노조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700조가 넘는 막대한 사내보유금을 쌓아두고 있는 현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종합해보면 강성 귀족노조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는 홍 후보의 주장은 우리나라의 척박한 노동현실을 왜곡하는, 비겁하고 저열한 논리라는 것이 드러난다. 재벌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시키고,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초래한 책임을 노조에 전가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노조가 없거나 금지한 나라도 많다. 그런 곳에서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도 노동자들은 늘 산재를 당하고 보호받지 못한다. 내 가족을 위해 복지안전망을 책임지는 좋은 일자리를 찾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미국의 노동절이었던 지난 2015년 9월 9일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자국 노동자들을 향해 던진 메시지 중 일부다. 한 사람은 노조를 기업 성장을 방해하고 국가경제를 좀먹는 주범이라 규정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과 규제완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 극명한 대비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어쩌면 '강성 노조'보다 큰 문제는 '강성 정치인'인지도 모른다.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서민보다 재벌과 기득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특권은 마음껏 누리면서 악의적인 흑색선전과 색깔론으로 끊임 없이 정치불신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정치인들 말이다. 그들이야말로 국민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시민의 정치 참여를 가로 막아, 궁극적으로 대의민주주의제도의 근본 취지를 망가뜨리는 주역 아닐까. 대통령은 그리 허튼 자리가 아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1인 미디어입니다. 전업 블로거를 꿈꾸며 직장 생활 틈틈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공유하기
'강성 노조'보다 '강성 정치인' 홍준표가 더 문제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