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첫무렵, 뒤꼍에 새로 돋은 흰민들레.
최종규
우리 식구가 전남 고흥에 깃들던 2011년을 떠올려 봅니다. 그즈음 마을 어디에서나 흰민들레를 보았습니다. 고샅에서도 논둑에서도 길가에서도 흰민들레는 매우 흔했습니다. 이무렵에는 제비가 매우 많이 찾아왔어요. 우리 집 대문 바로 앞에도 흰민들레가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서 하얀 꽃을 피우고 동그랗게 고운 씨앗을 맺었습니다.
마을 어디에나 흔하던 흰민들레는 차츰 줄어듭니다. 마을 어느 집이나 농약을 많이 쓰기도 하고, 논둑이나 길가를 차츰 시멘트로 덮으면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흰민들레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제비까지 해마다 매우 크게 줄어들어요. 제비가 흰민들레를 보려고 이 나라를 찾아오지는 않을 테지만(그러나 우리가 모를 뿐, 제비가 꽃을 보려고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이 땅을 오래도록 지켜 온 작은 숨결이 사라지는 흐름하고 제비가 줄어드는 흐름하고 맞물린다고 느껴요.
수많은 들풀이나 들꽃이 사라지듯이 흰민들레도 삶터를 지키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수수하게 흔하던 목숨은 아주 조그마한 삽질에도 쉬 힘을 잃거든요. 찻길을 낸다며, 아파트를 세운다며, 공장이나 골프장을 지어야 한다며, 큰 발전소하고 송전탑이 들어서야 한다며, 여기에 관광지를 꾸려야 한다며, 작고 수수한 목숨은 하루아침에 밀려서 사라지기 일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