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아닌 날은 없다> 표지.
오월숲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평등이 지배하는 곳. 공공성은 고사하고 시장이 제공하는 흔한 서비스마저도 접하기 어려운 곳. 단순한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서 당장의 생존조차 위협을 받을 수 있는 곳. 의료, 교육, 문화, 교통, 복지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는 곳. 거듭되는 인구유출과 고령화로 마을이 없어질 위기에 처한 농촌은 전원의 로망 대신 생존의 치열한 사투가 일상화 된 곳이다.
"팔십 평생 살았어도 나한테 꿈을 물어봐 준 사람이 없었는지. 허기사 어디 꿈꾸고 사는 세월이었간디요. 살려고 살았제. 일제시대 태어나서 애기 때부터 먹고 살라고 일했고, 나이 든께 얼굴도 안 보고 시집왔제라우. 새끼들 키우느라 일했고, 일만 하다가 늙어부렀제잉. 근디 뭔 꿈이 있었겄소야. 지금 사는 것이 어디 사람 사는 것이라요. 사람이란 것이 지 손으로 일해서 지가 벌어먹고 살아야 사람이제. 죽을날만 기다림서 경로당하고 집만 왔다 갔다 하는지, 이게 말이 아니제라우." (78쪽)여민동락의 진짜 역사는 어르신의 결정적인 한 마디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어르신이 꿈꾸는 노후란 그저 스스로 벌어 손주들에게 당당하게 용돈을 줄 수 있는 삶,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내는 인격적인 삶이었다. 무심코 던진 질문에 돌아온 어르신의 대답은 여민동락이 복지-경제-마을이 결합하고 선순환하는 농촌마을 재생과 부흥의 설계도를 그리는데 상상력을 제공했다. 모싯잎 송편공장의 등장은 어르신들의 '꿈을 여쭙는 과정'에서 시작된 낯선 도모(78쪽)였다.
오늘날 농촌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빈곤율이 50%에 육박한 노인들의 삶은 어떤가.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고 예우받기보다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주변부로 계속 밀려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대 농촌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삶은 오죽하랴. 공공성은 사라지고 복지가 곧 돈이 되는 세상에서 국가와 사회는 어르신들의 존엄한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 인생의 종반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겪는 삶의 위기는 곧 있으면 닥칠 미래의 내 모습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의 관계와 원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마을살이를 통해 삶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수 있을까. 저자인 강위원 여민동락공동체 대표살림꾼은 "여민동락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는 돌봄 복지를, 건강한 어르신들에게는 스스로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행복 일자리를, 지역 주민들에게는 건강한 마을과 바른 이웃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응원하고 힘을 보탠다"며 "그것이 바로 마을 생태계의 원칙이자 복지의 정도라 판단했다"고(76쪽) 설명한다.
꿈을 묻는 복지, 마을의 자연력을 키우는 공동체 복지, 함께 꿈을 실현해나가는 마을공동체의 복원. 소규모 노인복지센터에서 출발한 여민동락이 모싯잎 송편 공장을 짓고,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고, 경로당을 마을학교로 꾸리는 등 '문어발'식(?) 확장을 단행한 이유다.
자주, 자립, 공생의 마을공동체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