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욱 씨가 낸 책들사진집
안건모
내 사진은 예술 작품이 아니다마동욱은 남보다 늘 한 발 앞서 나갔다. 하지만 영악하지 못해 돈을 벌지는 못했다. 장흥 수자원공사에서 9천만 원 예산을 들인 수몰지역 영상 제작을 할 때도 사기를 당했다. 9개 업체가 신청했는데 모두 마동욱이 쓴 책 <아! 물에 잠길 내 고향>을 베껴 신청했다.
억울했던 마동욱은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를 했다. 한 군데 업체에서 천만 원에 합의를 보자고 했다. 마동욱은 먼저 500만 원을 받고 나머지는 나중에 받기로 하고 그 관계자 업무노트에 합의서를 써 주었다. 한 장을 복사해서 받아야 하는데 순진한 마동욱은 그걸 받지 않았다. 그 업체는 심사위원들과 짜고 그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나머지 합의금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수몰 영상물은 관점이 달라졌다. 마동욱은 수몰민의 애환을 담고 싶었는데 그들이 만든 영상물은 마을 사람들의 스토리가 없는 댐 홍보물에 불과했다. 마동욱은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에 장흥군에서 발주를 받아 조선대학교 모 연구소에서 발간한 <장흥다목적댐 백서>도 마동욱의 사진을 무단 도용했다.
마동욱은 오로지 기록을 남기고 싶어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런 마동욱을 이용한 사람들이 많았다. 방송사에서 수몰 지역을 찍는다고 나와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마동욱에게 사람 섭외를 부탁했다. 스스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대가는 받지 못했다. 장흥문화원에서도 책을 두 권 냈는데 거의 마동욱이 찍은 사진이다.
"자료를 쉽게 내줬다. 바보처럼 살아온 게 후회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다. 뭔가 이루어가는 것, 마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게 있으면 만족한다. 사라지는 게 안타까워 기록을 한다. 땔나무를 지게로 메고 가는 모습들, 토요시장 장터 모습들, 하다못해 번영회장 취임식도, 결혼식도, 장례식도 사진으로 남긴다. 지난 촛불집회도 16차까지 다 찍었다."
마동욱은 자기 작품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마동욱의 사진에는 지난 30여 년의 장흥의 내력과 장흥 사람들이 그대로 기록돼 있다. 그의 사진은 꾸밈이 없다.
작품을 만든다고 일부러 흑백으로 찍지 않는다. 구도를 잡는다고 눕거나 옆에서 찍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그저 사라져 간 마을을 기록했다. 그런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살던 고향을 떠올리고 자연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다.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나무 그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어르신들,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게 기록한다. 그런 사진을 보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사진 만큼이나 영상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동욱은 이렇게 강조한다.
"사진으로는 언어를 전달 못한다. 찰진 장흥 사투리도 녹음해 놓지 않으면 사라질 거다."
그동안 낸 사진집 10여 권, 삶은 넉넉하지 않다마동욱은 마을 전체를 한 눈으로 보기 위해 2년 전부터 드론으로 사진을 찍는다. 벌써 천만 원 넘게 들었다. 250만 원대 드론 네 대를 '아작'냈다. 2016년에 드론으로 찍은 사진집 <고향의 사계>(눈빛출판사), <하늘에서 본 장흥>(눈빛출판사) 두 권을 또 냈다. 6만 원, 4만 원짜리 비싼 사진집이다. 책은 거의 없는데, 출판사에 줄 돈만 빚으로 남았다.
마동욱은 사진 전시회만 해도 20여 차례나 열었다. 1997년에는 미국 시카고에서 <한국 농촌 사진전>을 한 달 동안 순회 전시를 하였다. 그동안 낸 사진집도 10여 권이다. 1998년에는 장흥군민상, 2012년에는 전남도문화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책을 많이 내고 상도 받은 마동욱의 삶은 넉넉하지 않다.
마동욱은 돈키호테다. 도전과 신념의 인간상이다. 남이 생각하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다. 마동욱 때문에 수몰 지역을 기록하는 선례가 생겼다. 걸어서 목포에서 문산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페테르부르그까지…. 그리고 영원히 남을 수만 컷의 고향마을 사진과 영상들 …. 지배자의 기록이 아닌 민중의 기록, 마동욱의 사진과 영상은 민중의 기억과 삶이다.
"돈보다 소중한 게 있다. 이제 언제 봐도 변하지 않는 내 고향이 담긴 기록 사진과 영상이 남아 있다. 아이들에게도 당당하다. 결혼한 큰딸은 지금 대학교 언어 교육원에서 7급 행정조교로 일하고 있고, 아들은 서강대 신방과를 다닌다. 나는 진작 아이들한테 하지 말아야 할 직업을 이야기했다. 판검사, 의사, 교사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직업은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자유로운 직업을 찾으라고 이야기했다."
58년 개띠 마동욱.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물음에 한 치도 망설임없이 한마디로 대답한다.
"이대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