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이웃 농민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

유기농민 농사일기

등록 2017.04.13 11:34수정 2017.04.1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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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가을하늘처럼 하늘이 새파랗다. 지난 주 감자밭 만들고 며칠 비가 내려서인가? 메말랐던 도랑물이 제법 콸콸 흘러간다. 공기가 맑고 흙이 흠뻑 젖어서인지 온 세상에 생명의 기운이 넘친다. 아침 일찍 사과밭에 나왔다. 며칠 사이에 산은 초록빛이 완연하다. 진달래, 개나리, 민들레, 냉이꽃이 산과 사과밭에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사과꽃봉오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사과나무 키가 자라는 만큼 사과 지주대에 나무를 고정시켜 준다. 사과나무가 똑바로 자라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기 위해서다.
사과나무 키가 자라는 만큼 사과 지주대에 나무를 고정시켜 준다. 사과나무가 똑바로 자라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기 위해서다.유문철

사과나무는 어린 나무일 때 손이 많이 간다. 사과나무를 심고, 사과나무가 똑바로 자라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주대를 세워 고정해 주어야 한다. 가뭄에 대비해 관수시설을 갖춰야 한다. 사과꽃이 맺히도록 가지를 벌려 주어야 하고, 짐승과 벌레, 세균과 곰팡이로부터 지켜주어야 한다.

두 해 동안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내지 못했다. 농사일 외에도 아스팔트 농사 짓느라 서울을 뻔질나게 드나들다 보니 때를 놓칠 때가 많았다. 박근혜가 구속되고 나서야 비로소 농사일에 전념하느라 봄날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한동안 분주하게 사과밭을 드나들었더니 제법 사과밭 모양새가 난다. 여기저기 터져나오는 사과 꽃봉오리를 보노라니 마음이 바쁘면서도 설렌다. 얼마 뒤면 활짝 피어날 사과꽃을 기다리다 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소백산 죽령 중턱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 3리에서 사과농사 짓는 내 친구 윤영화
소백산 죽령 중턱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 3리에서 사과농사 짓는 내 친구 윤영화유문철

오늘은 이웃 마을에 일손을 청했다. 동갑내기 사과 농사꾼 영화다. 소백산 죽령 중턱에서 부모님과 사과 농사를 짓는다. 어릴 때 도시로 나갔다가 다섯 해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4년 전 사과 공부하는 모임에서 알게 되어 지금까지 농사와 여러가지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사과협동조합 일과 농민회 일은 영화와 함께 하는 일 중 공을 들이며 함께 하는 일이다.

영화는 부모님과 농사 짓고 여러가지 지역 활동을 한다.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물찬 제비처럼 날렵하게 배드민턴을 친다. 내가 영화보다 배드민턴을 먼저 시작했는데 난 중도에 포기했다. 풍물패에서 쾡과리를 친다. 목공에도 재주가 있다. 우리집 아름다운 생태뒷간이 영화의 작품이다. 자동차에도 꽤 조예가 깊다.


햇수로는 내가 다섯 해나 귀농 선배인데 영화는 지역 서열(?)이 나보다 위다. 동갑내기인데 무슨 서열이 있냐고? 그는 마을 최고 지도자인 이장이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10년 동안 살면서 이장 아랫 등급인 새마을 지도자를 한 해 맡아본 것이 다인데 말이다. 영화는 귀향 네 해만에 젊은 이장님이 되었다. 영화 고향 마을 어르신들이 영화를 전폭 지지했기 때문이다. 역시 고향이 좋긴 좋다.

영화는 부모님과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대부분 혼자 농사를 짓는다. 영화나 나나 아내가 회사를 다니기 때문이다. 혼자 농사를 지으면 무척 심심하고 외롭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 일하면 일에 능률이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두 배의 능률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서너배 이상의 능률이 난다는 걸 영화나 나나 잘 안다. 동병상련하는 처지랄까?


오늘 사과나무를 지주대에 고정하는 일을 함께 해달라고 영화에게 부탁을 했다. 혼자 하려면 몇날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라서 일손이 필요한데 어디 일손을 구할 수 있어야지? 전화를 해서는 애걸복걸을 했더니 아침에 사과밭에 나타났다. 사과묘목을 기를 때부터 사과나무 심을 때도 영화가 함께 했다. 이 사과밭이 지나온 모든 과정을 영화는 잘 알고 있다.

 사과나무 지주대 고정작업을 하느라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윤영화 사과 농민
사과나무 지주대 고정작업을 하느라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윤영화 사과 농민유문철

사과밭 일을 종일 함께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40대 중반 사내들이 뭐 할 이야기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늘 혼자서 일하느라 외로웠기에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안다. 밭에서 일하며 말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대답없는 사과나무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

시골에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 40대 농민은 시골에서 천연기념물이나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는 퇴물 취급을 받지만 시골에서 40대는 청년 축에도 못 든다. 그러니 시골에서 농사 지으면서 힘겨운 농사일보다 외로움이 더 힘겹다. 오늘 하루 동갑내기 농민 친구와 일하며 수다 떨다보니 하루해가 금방 저물었다. 역시 사람 냄새 나는 농사일이 좋다.

사과밭에서 먹는 새참 파릇파릇한 사과밭 풀 위에 앉아 집에서 싸온 약밥 도시락을 새참으로 먹는다.
사과밭에서 먹는 새참파릇파릇한 사과밭 풀 위에 앉아 집에서 싸온 약밥 도시락을 새참으로 먹는다.유문철

덧붙이는 글 유문철 시민기자는 전농 단양군농민회 회장입니다. [유기농민 농사일기]를 오마이뉴스와 페이스북에 쓰고 있습니다.
#단양사과협동조합 #단양군농민회 #단양갑자사과농원 #단양한결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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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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