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칠드런> 의 소아암 경험자 이담희(왼쪽), 윤서영(오른쪽)<뻔한칠드런> 의 소아암 경험자 이담희(왼쪽), 윤서영(오른쪽) 팀원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장성열
- '뻔한칠드런'이라는 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릴게요.이담희: '뻔한칠드런'이란 이름은 "Fun한 Child+Run"이라는 뜻인데요. 먼저 Fun한 방식으로 기부를 하자, 칠드런은 'Children'이 아니라 'Child'와 'Run'을 합친 단어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달려가겠다, 재미있는 기부방식으로 아이들이 달릴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에요.
윤서영: 저는 원래 담희와 같은 팀이 아니라 다른 팀으로 나오려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한 팀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담희와 저는 소아암 경험자로 활동했는데요. 이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같이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중고생 자원봉사상을 함께 수상한 고유정이라는 친구와 라오스 해외봉사를 함께 다녀온 최윤지라는 친구도 합류하게 됐어요.
- 두 분의 자기소개도 부탁드려요.담희: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이담희라고 합니다. 5살 때 백혈병을 경험했고, 고등학교 때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지금은 말을 안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그런 건강한 이미지를 얻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죠. 고등학교 때 공부도 일부러 더 열심히 하고, 반장과 임원도 일부러 맡았고요. 남들 앞에 서서 잘 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프다는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더 씩씩하게 생활하면서 건강한 이미지를 얻었어요.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여하게 된 건 소아암 경험자들이 아프고 연약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꿋꿋하게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후원 받는 입장이 아니라, 저희가 남을 후원할 수 있다는 걸 더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영: 저는 중국어를 전공하는 윤서영이고요. 소아암은 중학교 2학년 때 발병했는데 치료기간이 무척 짧아서 3학년 때 바로 복귀했어요. 원래 공부보다는 다른 대외활동 하는 걸 좋아해서, 봉사활동과 대외활동을 하면서 엄청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러다 소아암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소아암 환아들도 이런 편견 때문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친구들이 적어도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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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경험자'라고 하셨는데, '완치자'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경험자'가 더 정확한 표현인가요?담희: 사실 완치라는 표현이 맞지 않더라고요. 옛날에는 소아암 치료 종결 후 5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내려 줬는데, 요즘은 5년이 지나고 나서도 재발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래서 '경험자'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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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전 답변서에 "내가 경험했다고 이야기하기까지가 힘들었다"는 대목이 있었던 거 같아요.담희: 저는 발병 후에 약 1년 간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초등학교 수업 빠지고 병원에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러면 애들이 알잖아요. 2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제 병명을 소개해 준 적이 있어요. "이 아이가 이것 때문에 이렇게 아프니까 잘들 챙겨주라"고요. 선생님은 저를 배려한다고 그렇게 하신 건데, 제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죠.
그 이후 사람들이 저에 대해 선입견을 확 가졌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말하는 걸 꺼려했어요. 지금은 내가 소아암을 겪었다는 게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내가 이겨낸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이런 걸 밝히는 거에 대해서 지금은 꺼려하지 않아요.
-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서영: 소아암 경험자 친구들을 모아서 활동하는 한국소아암협회라는 단체가 있어요. 가끔씩 캠프나 봉사 활동을 하는데, 거기 나갔다가 만났어요. 동갑이고, 같이 밥 먹고 하다 보니 친구가 됐어요.
- 거기서 어떤 봉사를 했나요?담희: 저는 1년간 모발 기부 업무를 했어요. 사람들이 모발을 기부하면 그걸 가발로 만드는데, 저는 사람들이 보낸 모발을 정리하는 일을 했어요.
서영: 저는 일반적인 사무 보조 봉사를 했어요. 그리고 환아들과 놀아주는 역할도 했고요. 병원이나 학교에 찾아가고 병원에서 체험부스 운영하는 것도 했어요.
- 행사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담희: 지금은 팀원 네 명이서 하루에 1만 보씩 걷고 있어요. 그 외에 따로 하는 건 없어요.
서영: 저는 원래 검도를 좀 했어요. 그래서 사실 저는 걱정을 안 해요. 다른 두 명의 친구들도 기아체험을 하거나, 혼자서 자전거로 국토대장정을 한 경험이 있어요. 팀원들은 걱정이 안 돼요.
- 후원 리워드로 팔찌를 만드신다고 하셨죠?담희: 네. 왜냐면 저희는 대학생 신분이니까 기초 자금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최저가로 시작해서 조금씩 벌자는 생각으로 했어요.
서영: 일단 1차로 팔찌를 팔아 보고 안 되면 다른 걸로 바꾸기로 했어요. 근데 이게 잘 팔려요. 주변에서 계속 연락이 와요.
- SNS로 판매하면 배송비가 또 들어가지 않나요?담희: 저희가 커버 가능한 지역은 직접 가요. 아무래도 주변인들이 많이 사니까요. 아는 봉사단체 오빠한테도 사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열 개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 네 분 다 여성이라, "여자인데 완주는 힘들지 않겠느냐?" 같은 말도 들었을 거 같아요.서영: 아직까진 그런 이야기는 안 들었어요. 또 저희가 완주하면 그런 이야기는 못 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걱정도 안 하고요.
- 부모님들은 뭐라고 하세요? 걱정은 안 하세요?담희: 어머니는 "네가 좋은 일 하는 거니까"라며 응원해 주시고요. 100km라는 이야기를 안 했던가?(웃음) 아무튼 평소에 걱정을 많이 안 하세요.
서영: 저는 원래 고집도 있고 그냥 하는 편이라서 엄마가 별로 신경을 안 쓰세요. 그래서 지난해에도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왔거든요. 혼자 100일 동안 여행하는 걸 처음엔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준비과정에서 여행 자금도 열심히 벌고, 자격증도 따니 더 이상 뭐라고 안 하시더라고요. "네가 알아서 잘 하겠거니"라면서요.
- 대학생들이 이런 도전을 한다고 하면 "쟤 또 스펙 쌓으려고 한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스펙 한 줄 때문에 취업계 내고 회사 다니는 학생도 많이 봤고요. 그런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담희: 근데 그 한 줄 때문에 100km를 걷기에는... (웃음)
서영: 저희는 100km 걷고, 돈이 안 모이면 우리가 그 돈 내야 해요. 이걸 '스펙'으로 보는 사람은 딱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암 걸릴 것 같다는 말, 어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