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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사랑
제발, 그냥 네팔 좀 가게 해주세요."샤오지에 네 야오 션머?" (아가씨 뭘 원하세요?)승무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지만 네팔에 가져가야 하는 이타 플래그를 공항에서 만드느라 보딩 30분 전에야 입국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데려다준 남자친구에게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겨우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로 달려가 부랴부랴 비행기를 탔더니 손가락 끝까지 피로해졌다. 여권 내려놓을 생각도 못하고 멍을 때리는 중이었는데 승무원이 말을 걸었나 보다. '요즘 비행기에서는 샤오지에(젊은 아가씨)라는 말은 잘 안 쓰지 않나.' 생각하며 말했다."워 야오 삥슈에이" (차가운 물 주세요.)냉수 먹고 속을 바짝 차리자. 나는 이 비행기를 시작으로 두 번의 환승과(환승할 때마다 수화물을 찾고 티케팅도 다시 해야 한다. 왜! 수화물 규정을 읽어보지 않았니! 과거의 나!!!) 세 번의 출입국심사를 통과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환승에서는 환승 비자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가 새벽 6시에 호텔 셔틀을 타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야 하니 비행기를 탔다고 마음을 놓아선 안된다. 지금 이 비행기로 네팔까지 갈 수 없으니까.
복잡한 여정의 이유는 역시 예산절감. 인천발 네팔행 항공권은 40만원이다. 한 번 환승과 두 번 환승 항공권 가격이 거의 30만원 차이가 났다. 경유지에서 호텔을 자가 부담하더라도 두 번을 경유하는 비행기가 더 싸다. 머릿속으로 계산이 끝나자마자 항공권을 결제했다. 신이 났다. 몸이 조금만 고생하면 여행자금을 아낄 수 있다. 환승 숙소도 열심히 찾아 바로 결제했다. (신나서 결제할 일이 아닙니다. 경유 시간이 길면 각 항공사마다 제공하는 무료 호텔이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미대 언니 항공사에도 무료 호텔이 있었어요. 하하. 뭐 한 거니! 과거의 나!)
첫 번째 환승은 무난하게 패스. 늦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드레날린을 폭파시켜 호텔에서 밤을 꼴딱 새우고 비행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비행기는 연착되고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다 거지꼴로 숙면을 했다.(이때부터 거지꼴..) 보딩 안내에 잠이 깨 비몽사몽 시간을 확인하니 비행기가 두 시간 가까이 연착이 되었다. 살짝 불안해 다음 환승시간을 계산해보니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시간이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탑승 후 헤드뱅잉을 하며 졸다 보니 금방 다음 경유지에 도착했다.
침을 닦고 서둘러 나와 배기지 클레임을 찾았다. 두 번째 경유지는 운남 쿤밍. 호도협 트레킹 할 때도 왔었고 별일이야 있겠냐며 공항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온 것이 문제였을까. 기다려도 기다려도 수화물이 오질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짐이 언제 오냐고 공안들에게 물어봤지만 시골공항이라 그런지 공안들이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
중국어로 짐이 언제 오냐고 묻자 한 젊은 공안이 사투리로 뭐라고 신나게 랩을 했다.(몰라! 못 알아듣겠다고!) 한 시간이 지나자 중국 승객들까지 난리가 났다. 삿대질이 오가고 랩 배틀이 시작됐다.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던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해줄 공안을 찾아다녔지만 그곳은 우주정거장 같았다. 어떤 의사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 내 여행은 여기서 끝인 건가.'갑자기 콧물과 눈물이 쏟아졌다. 코를 찍찍 들이마시고 있는데 아까 랩을 하던 공안이 와서 내 비행기는 위층으로 올라가면 탈 수 있다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한다. 설명은 고맙지만 짐이 안 와서 못 가고 있는 거라네 청년. 코맹맹이 소리로 설명을 하는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
'너 이 녀석, 갑자기 나한테 왜 삿대질을 하는 거니.'기분이 나빠지려는 차, 배기지 클레임 위에서 내 캐리어가 '나 여기 있다!'고 존재감을 뽐내며 나타났다.(오예!) 공안 청년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응꼬가 빠지게 달렸다. 티켓팅도 안되어있는 엉망진창 항공권을 떴다 떴다 비행기와 함께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캐리어를 들다시피 뛰어 티켓 창구로 가서 이 티켓을 내밀었다.
"헉헉, 제발 타게 해주세요. 전 네팔에 가야만 해요.""유사랑? 승객 명단에 없는데?""이건 또 뭔 소리입니까. 명단에 없다니요."창천 병력 같은 말이다. 엎어진데 덮어졌고, 고쿠라 졌는데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렇게 꼬일 줄 알았더라면 돌아가서 공장 알바를 하는 한이 있어도 직항을 끊었을 텐데!'찰나의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재차 확인을 부탁했다. 항공사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 내 여권 정보를 확인했다. 한참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니 관리자인듯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비행기가 지금 만석이야. 자리가 없어."'엄마야. 이건 또 무슨 말발굽 소리인가.'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제발 보내달라는 눈빛을 쏘았다.
"당신 정보는 확인이 되었으니까 비즈니스석을 줄게. 자, 얼른 뛰어가 늦었어."벼랑 끝에 내몰려도 죽으리라는 법은 없어. 사람 말은 끝까지 듣고 봐야 한다.
"고마워! 사랑해! 수고했어! 잊지 않을게! 너희는 축복받을 거야! 갓블래슈!"아무 말이나 좋은 말만 골라 잔치를 벌이며 달려가는 나를 보며 항공사 직원들이 깔깔댔다. 머리는 산발에 울다만 거지꼴로 펄쩍대며 손을 흔드니 웃길 만도 하다. 신나게 달려가 맨 마지막으로 보딩을 하고 푹신푹신 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역시 비즈니스는 달라. 비행기는 한 시간 넘게 활주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으잉? 허허 비행기가 연착됐어요.. 뛰고 울고 생난리 블루스가 무색하게스리..) 꼴찌면 어떤가, 웃음거리가 되면 어떤가. 난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
드디어, 저 네팔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