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수유에 관한 각종 책들
김소향
모유수유의 1차 관문은 먼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과정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와이어 달린 브레지어는 여성의 가슴을 미적으로만 아름답게 보이게 할뿐, 가슴 본연의 기능인 수유와는 아주 무관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런 브레지어를 적어도 15세 때부터 사용했던 나의 가슴도 마찮가지였다. 양쪽 유두가 아기가 젖을 먹기에는 불편한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배가 고파 지쳐서 울었으며, 나는 젖을 못 무는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서 울었다. 그제야 내 유두가 이 모양이였다는 것을 한탄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자각의 시기는 늦었고 나는 어떻게든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유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이기에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아이는 배가 고파 울다 지쳐 울음 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지경이 됐다.
출산 후 나는 퉁퉁 부은 몸으로 두 시간에 한 번씩(아이가 젖을 물지도 못하는 상황임에도) 참 무식하게 젖을 물려가며 잠, 그리고 젖과의 사투를 시작했다.
흔히들 많은 엄마들이 여기에서 포기를 한다. 적어도 2개월은 초유를 먹이리라 마음을 먹지만, 젖을 물리는 것부터 쉽지 않은 것이다.
출산을 하고 한달, 수유를 하고자 열심히 젖을 물리지만 처음부터 K자 모양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는 엄마가 몇이나 될까? 지금은 이렇게 반문하지만, 아이를 낳기 전 난 다르게 생각했다. 출산교실, 태교교실에서 듣고 출산대백과 사전에서 그걸 봤을 때, 난 아이만 낳으면 자연스럽게 될 거라 여긴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 대다수 엄마의 젖량은 자연스럽게 늘지만, 아이가 젖을 제대로 물어서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며 젖은 불게 된다(아이가 젖꼭지를 입에 넣는다고 해서 다 모유를 먹는 것은 아니다). 젖이 돌지(순환) 못하면 유선염이 찾아오는데, 나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왔다. 더구나 일부 아기들은 태어난 뒤 며칠 안에 황달을 겪기도 하는데, 원인이 모유일 때는 일정 기간 모유수유를 중단해야 한다. 첫 출산일 경우,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며 방법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주변에 호소를 하기 시작한다.
언론들은 엄마의 젖이 '최상의 선물'이라며 반드시 '모유수유를 하라'고 강요한다. 또 모유수유가 아이의 면역력 향상과 엄마의 건강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설파한다. 그러나, 그 어떤 언론도 젖을 어떻게 물리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신랑은 더 당황스러워 했다.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출산을 했던 나였기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신랑은 내가 출산 이후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힘들어하는 게 모유수유 때문이라는 사실에 난처해 했다.
시어머니께서 산후 조리를 해주신다고 함께 했지만, 어머님의 모유수유에 대한 기억은 이미 너무 오래되었고 나보다 먼저 출산한 두 시누이는 일찌감치 수유를 포기했던 전력이 있었기에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같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비췄으니, 바로 자연출산을 준비하며 만난 인터뷰 커뮤니티 엄마들의 경험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들에게 '신의 손 할머니'의 풍문을 접했고 그 분을 만나게 되었다. 출산한 지 한 달이 안 된 3월 말,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 싶어 급히 예약을 했다. 익히 들은 명성 답게 신의손 할머니는 포스가 있었다. 할머니가 계신 그곳도 수유동.
일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선생님은 모유수유 전장의 선봉에 계셨다. 김 선생님은 서울대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40년간 간호사로 재직했다. 퇴직 후에도 산전 모유수유 교육과 유방관리 지도에 평생을 바친 분으로, 엄마들 수유 고통의 구원자로 불렸다. 모유수유 사전교육에 대해 들었지만, 나는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건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아이를 낳기 전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모유수유가 잘 될 거라 생각했다. 주변 엄마들도 같은 문제에 봉착했었다고 회고하며 '모유수유'란 말을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한다. 모유수유의 첫걸음과 성공은 결국 산전 모유수유 교육과 나아가 수유 자세를 잡는 수유 초기의 밀착 교육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캠페인 광고와 포스터로 엄마들에게 모유수유를 강요할 일이 아니다.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하는 등 모유수유를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3개월만에 복직을 해야 했던 터라, 유축을 해놓고 출근을 했는데, 그때 회사를 다니며 스트레스를 받은 탓인지 젖양이 확 줄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유축을 했고 또 젖이 옷 밖으로 새는 일이 있기도 했다. 수유실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백화점이나 가야 있었지 아이가 배고프다고 울면 엄마들은 어디 구석진 곳을 찾아 헤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다시 수유를 시작하려 한다. 위에 나열한 모든 격정의 시기를 또 다시 겪을지언정 나는 우리 둘째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첫 번째 선물'인 초유를 주고 10개월의 시간 동안 아기가 들었던 나의 심장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들려줄 것이다. 오직 아기와 나를 위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그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두려운 마음보다 아기와 눈을 마주치며 수유했던 그 행복한 시간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작고 보드라운 아이가 내 품 안으로 파고들 때의 희열감을 또 다시 만끽하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모유수유는 껌? 출산보다 두려운 모유수유 잔혹사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