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수당(三修堂)에 같이 모셔져 있는 ‘도교 노자’ ’불교 석가모니’ ‘유교 공자’
김기동
삼수당(三修堂)에서 '수(修)'는 한국 한자에서는 '닦다, 익히다'라고 해석하지만, 중국어에서는 '고쳐서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중국사람은 삼수당(三修堂)이라는 공간을 찾아 각각 다른 능력을 갖춘 공자와 석가모니와 노자에게 이루고자 하는 바를 한꺼번에 말하는 겁니다. 마치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자장면과 짬뽕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짬짜면'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중국사람은 각각의 종교가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고, 또 그 다른 사상이 서로 모순된다고 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필요한 부분을 가져다 사용하는 실용적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은 유교로 개인 생활은 도교로 청나라 옹정황제(1678~1735)는 "불교로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도교로는 몸을 다스릴 수 있으며, 유교로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 실제 그렇게 생활했고요. 황제 신분으로, 먹는 문제 즉 경제 생활은 풍족했기 때문에 돈을 벌게 해준다는 '관우'(關羽)는 필요하지 않았나 봅니다.
일반 중국사람은 공인으로 생활할 때는 유교를, 개인(私人)으로 생활할 때는 도교를 사용해 살아갑니다. 중국사람은 사회생활에서 공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는, 철저히 유교 사상에 따라 국가에 충성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 조직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합니다. 즉 유교 사상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마음으로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겠다고 목소리 높여 말하지요.
하지만 개인 생활 공간으로 돌아오면, 사회생활 공간에서 내가 언제 공자님 같은 말을 했냐는 듯, 그런 말은 깨끗하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개인 생활에 필요한 도교 사상에 따라 건강하게 오래 살고, 돈을 버는 데 힘씁니다.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유교 공자 말씀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개인 생활을 하면서는 도교의 신선처럼 오래 살기 위해 좋은 음식을 먹고, 또 이런 좋은 음식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돈을 버는 데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설령 낮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말한 내용과 저녁에 개인 생활을 하면서 행위하는 내용이 서로 모순될지라도, 각각의 상황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대처 방안을 실용적으로 판단해 행동했기에 스스로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고 여깁니다.
'관포지교'의 교훈'관포지교'는 친구인 관중과 포숙 두 사람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지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정변이 일어나자 관중은 왕자 '규'를 포숙은 왕자 '소백'을 수행하고 이웃 나라로 피합니다. 제나라에서 정변을 일으킨 왕(제후)이 죽자, 관중이 모시는 '규'왕자와 포숙이 모시는 '소백'왕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됐습니다.
관중은 서둘러 모시던 '규'왕자를 귀국시키고, 자신은 '규'왕자의 동생 '소백'을 암살하려고 '소백'왕자가 지나는 길목에 숨어 기다립니다. 관중은 '소백'왕자가 나타나자 활을 쏘아 '소백'왕자를 죽이고, 자신이 모시는 '규'왕자를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여유롭게 제나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이때 관중이 쏜 화살이 '소백'왕자의 복부를 명중시키기는 했지만, 불행하게도 화살이 왕자의 허리띠 장식을 맞혔습니다. '소백'왕자는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죽은 척하면서 관중은 속인 것이었습니다.
그후 '소백'왕자가 왕권 다툼에서 승리하자, '규'왕자를 지지했던 신하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자결합니다. 하지만 관중은 도망가서 목숨을 보전하지요. '소백'왕자는 제나라 15대 왕에 올라 환공이 됩니다. 환공은 왕이 된 후 그동안 옆에서 보좌했던 포숙에게 재상(총리)을 추천하라고 합니다. 이때 포숙은 친구인 관중을 추천합니다. 실용주의자인 환공은 관중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원수지만, 능력을 높아 사 그를 총리에 임명합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오패(다섯 패자) 중 첫 번째 패자로 만듭니다.
그후부터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 사이를 말할 때, 관중과 포숙을 이야기하면서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가 생긴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