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창고야미도에서 멸치를 보관하던 창고
김교진
멸치 잡으러 왔다가 섬마을 처녀에게 반해서 야미도에 눌러 살게 된 정씨의 남편은 작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 야미도에는 멸치가 많이 잡혔다. 멸치가 많이 잡혀 이를 말리느라고 마당에 널어놓는 것도 부족해서 지붕 위에서도 말려야 했다고 정씨는 회상했다. 집 앞 창고가 멸치를 보관하던 창고인데,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가고 있다.
바다가 방조제로 막히니까 물고기를 잡을 수 없어서 야미도 주민 가운데 관광객 상대로 식당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마을 입구에서 임시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장사를 했는데 공유지를 불법으로 점유했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예전에 어업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생활비로 써버린 상태다.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사람도 있다. 현재 야미도 원주민들은 60여 세대가 남아있다.
정씨는 야미도가 육지와 연결되어 변한 것이 많다고 말했다.
"육지가 되니 전기가 들어왔어요. 예전에도 야미도에 자가 발전시설이 있기는 했지만 이제 육지에서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어요. 그리고 군산시에서 여기까지 버스가 다녀. 예전에 육지에 가려면 한 시간 넘게 배타고 나가야 했어요. 천지가 개벽할 일이지."배타고 멀리 다녀야 했던 길을 이제는 버스를 타고 다니니 세상 참 좋아졌다. 비록 어업은 못하더라도 섬을 찾는 관광객 상대로 마을 사람들은 식당을 열던가 가게를 할 수는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방조제가 막히면서 달리 할 것이 없는 다른 지역 어민에 비해서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평생 물고기만 잡던 어민들이 도시인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방조제 안쪽에 있는 어민이나 바깥에 있는 어민이나 전라도 말대로 '폭폭한' 삶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최치원의 전설이 깃든 신시도야미도를 떠나 신시도에 들어섰다. 신시도도 섬의 끝이 새만금방조제에 닿아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신시도는 고군산군도에서 제일 큰 섬이다. 신시도는 군산과 부안을 잇는 새만금방조제의 가운데에 있다. 신시도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은둔한 섬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시도 어촌체험안내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신시도를 걸었다. 섬을 한바퀴 다 걸으려면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신시도초등학교와 마을 안을 짧게 걷기로 했다. 신시도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여덟 명인 작은 학교이다. 작은 학교이지만 예쁘다. 학교 벽에는 고전만화인 인어공주에서부터 현대물인 뽀로로까지 만화주인공 그림을 그려 놨다. 병설유치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