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안 먹는 우리 아이, 어쩌면 좋을까?

영국 BBC, 채소 안 먹는 것은 진화의 과정, 인내심 가져야

등록 2017.04.05 12:08수정 2017.04.0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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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좀 먹어봐."
"싫어. 맛없어."
"한 번만 먹어봐."
"안 먹어."
"너 그러면 이따가 간식 안 줄 거야. 어서 먹어!"

아이가 있는 집에선 날마다 전쟁이 벌어집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채소를 먹이고 싶어 하고, 아이는 필사적으로 거부합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습니다. 아이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채소에 입맛을 들여야 성인이 되었을 때 골고루 잘 먹게 되리란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사실일까요? 3일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아이들이 채소를 싫어하는 것은 진화과정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습성입니다.

런던대학 심리학자 루시 쿠키는 15년 이상 아이들의 식습관을 연구했습니다. 쿠키는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을 크게 '까다로운 아이'와 '혐오하는 아이'로 분류했습니다. '까다로운 아이'는 편식이 심해 먹는 음식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먹지만 닭고기는 먹지 않습니다. 또는 튀긴 감자는 좋아하지만 삶은 것을 싫어하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혐오하는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음식을 아예 거부합니다.

인간은 결코 식량이 풍부한 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음식을 거부하는 것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척박한 환경이 오히려 아이들의 입맛을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고대 인류는 자연에서 식량을 구해야 했습니다.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식물입니다. 불행하게도, 식물에는 독이 있습니다. 고대 인류는 수많은 식물 중에서 어떤 것이 독성이 강한지, 어느 것을 먹어야 해독이 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식물의 잎, 뿌리, 줄기, 열매를 모두 직접 먹어봐야만 알 수 있겠지요.

가능한 한 많은 식물을 채집해 스스로에게 실험을 해야 했습니다. 저 풀을 먹으면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이지만, 먹지 않으면 무조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생존을 위해 주사위를 던져야 했던 이 상황을 '잡식동물의 딜레마'라고 부릅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서서히 일부 식물의 독성에 적응해갑니다. 독성을 처리하는 시스템이 몸속에 갖춰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한 살까지는 먹을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 시기까지 아이들은 어른이 주는 것을 모두 받아먹습니다. 이유식 속의 브로콜리나 당근도 거리낌 없이 모두 먹습니다. 하지만 24개월이 지나면 아이들은 스스로 걸어 다니며 서서히 독립 준비합니다. 주변 환경을 탐색하면서 그 속에서 먹을 것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1세의 어린 아이에게서 나타나지 않던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아이에겐 아직 독을 처리할 능력이 없습니다. 진화론적으로 낯선 음식을 일단 피하는 것이 아이의 생존에 유리합니다. 새로운 식물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많다는 뜻이죠.


2세에서 6세까지의 유아기 아이들에게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영양소가 풍부한 채소를 거부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행동은 영양가보다 생존이 더 중요했던 고대 사회의 유산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척추동물 역시 익숙한 종류의 먹이만을 찾아 먹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딜레마는 있습니다. 어렸을 때의 편식 습관이 성인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채소를 거부하는 것이 유전이라면, 영영 아이에게 채소를 먹일 수 없는 걸까요? 또, 채소를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2004년 한 연구팀이 새(울새)에게 먹이를 주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엔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색깔의 갈색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빨간색으로 물들인 먹이로 바꿔갔습니다. 처음엔 빨간 먹이를 먹지 않던 새들이 모든 먹이가 빨간색으로 바뀌자 새의 3분의 2는 빨간 먹이를 먹었습니다. 3분의 1은 끝까지 먹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에 조금 더 도전적인 유전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먹지 않는, 아주 완고한 유전자를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역시 어린 동물들의 행동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984년 야생에서 살던 배고픈 어린 원숭이가 어른 원숭이의 행동을 따라 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이어진 연구에서, 어른 원숭이가 이제 막 태어난 원숭이 앞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먹을 것을 선택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유아기의 원숭이 앞에서 새로운 음식을 채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005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연구팀 역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어른 원숭이가 다양한 색으로 염색한 밀을 먹을 때, 어린 원숭이들 역시 새로운 음식을 더 잘 수용하고 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만일 어른 원숭이가 한 가지 색깔의 밀만 먹거나, 다른 색깔의 밀을 전혀 먹지 않을 때, 어린 원숭이 역시 새로운 음식을 꺼리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어린 원숭이가 어른의 행동을 모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같은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채소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거부감도 약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은 입맛 까다로운 아이들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을 제시했습니다.

가능하면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새로운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비난하거나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가 새로운 것을 아주 조금만 먹더라도 그 용기를 칭찬해주세요. 새로운 것을 아주 천천히 받아들이는 아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간식을 주지 마십시오. 아이가 먹지 않는 재료는 아이가 좋아하는 요리법으로 새롭게 조리해 주세요. 예를 들어 날 당근을 잘게 썰어 다른 재료와 함께 튀겨보는 겁니다.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어른들의 인내심이 아이들의 식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편식 #채소 안 먹는 아이 #입맛 까다로운 아이 #자녀 식습관 #잡식동물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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