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열차를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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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것은 없었다. 숙소도, 할 것도. 그제야 내가 떠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들어가 있던 대구 안내서를 펼쳤다. 앞산 야경이 볼만 하단다. 마침 야간기차를 탔으니 야경이 딱이었다.
그러나 '야경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내 마음을 어찌나 잘 아는지, 안내서에 대구 막창집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혼자 먹을 생각을 하니 조금 쓸쓸했다. 혹시 몰라서 여행자 카페에 글을 남겼다. '지금 대구 막창 같이 드실 분?'
대구는 지하철이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아마도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일 것이다. 카페를 통해 연락한 그 남자와 안지랑역에서 만났다. 막창 골목은 안지랑 역에서 가까웠다. 그는 혼자 여행 중이며, 현재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추천해준 현지(?) 맛집으로 이동했다. 막창 집에서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나눴다. 혼자 여행 중인 이유부터 아무도 모르는 비밀까지.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술술 털어놓기도 한다. 아마도 그 사람이 '완전한 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 입으로 비밀을 말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기보다 스스로가 어색해진다.
그것은 타자화된 나와 마주하기 때문인데, 그것이 혼자 가는 여행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자화된 자아를 달래려고 술을 한·두잔 기울였다. 그 후, 나는 생에 가장 미친 짓을 한다.
사실 앞산 야경은 반 포기상태였다. 술을 마셨을 뿐더러, 막창 집에서 우방랜드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막창집 주인은 우방랜드에서 보는 야경이 앞산에서 보는 것과 똑같다고 했다.
그러나 왠지 모를 호기가 생겼다. 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느끼고 싶었다. 비밀을 털어놓는 것으로 타자화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난 지금 대구에 돌발여행을 오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