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양된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입항한지 2일째인 지난 1일 오전 반잠수선 화이트마린호에 실린채 정박해 있다.
이희훈
바닷속 심연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지난달 23일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고가 발생한 지 무려 1073일이나 지난 뒤다.
이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선체가 모습을 드러내자 너나 할 것 없이 오열했다. 비단 그들만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다.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상할 대로 상한 세월호의 모습에 하늘도 울고 사람도 울었다. 아침부터 하늘은 희뿌연 빗줄기를 허공에 떨구었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눈가 역시 이내 뜨거워졌다.
"우리 은화가 저렇게 지저분한 데에 있었구나. '은화 불쌍해서 어떡하지', '추워서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졌어요."선체 인양과정을 지켜본 미수습자 조은화양의 어머니는 가슴 먹먹한 심경을 저렇게 표현했다. 아마도 사고 이후 겪어야 했던 숱한 좌절과 절망,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쓰라림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을 터다. 한켠에서는 이제는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가슴이 뜨겁게 요동쳤을 것이다.
1073일 만에 모습 드러낸 세월호, 하지만...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들의 마음은 다시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도 여전히 세월호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는 탓이다.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발견된 유골이 돼지 뼈로 밝혀지며 다시 한번 가족들을 상심시킨 데 이어, 세월호 절단 문제를 놓고 정부와 유가족들 사이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미수습자 수습을 위해 온전히 보존되어야 할 세월호 선체가 훼손되는 일이 벌어져 논란이다.
내막은 이렇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일 선미 좌현 차량 출입문(좌현 램프)을 절단하고 입구를 막고 있던 굴착기와 승용차를 부두로 하역시켰다. 세월호를 육상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특수운송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터를 진입시킬 통로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게 해수부의 해명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세월호의 침몰 원인으로 꼽히는 과다 선적과 고박 부실 등을 확인하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선체조사위가 지난달 28일 "세월호의 조타실, 기계실, 기관실, 화물창 등 4곳은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만큼 훼손하지 말아 달라"라는 공문을 해수부에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되풀이되는 해수부의 비상식적 행태
그런데 해수부는 이 공문을 무시한 채 화물칸 선미 좌현 램프에서 굴착기와 승용차를 끌어내렸다. 사고 원인 파악에 중요한 단서가 될 세월호 선체의 일부를 선체조사위와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훼손하고 화물까지 옮겨버린 것이다. 사건의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해수부가 어긴 셈이다.
문제는 해수부의 비상식적 행태가 단지 이번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해수부는 지난해 8월에 이미 선체 절단을 통한 선체 정비방식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사회적 논란을 유발한 바 있다. 당시 이 결정은 유가족은 물론이고 세월호 특조위와 일체의 협의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바로 얼마 전까지 세월호에 구멍을 뚫는 문제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며 논란을 키운 것 역시 해수부다.
지난 3년을 하루하루 피 말리며 살아왔을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에게는 이런 모습 하나하나가 또 다른 고통이고 아픔이며 좌절이다. 선체 조사에 앞서 해수부가 유가족 및 선체조사위와 긴밀한 협의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세월호의 선체 인양이 참사의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수습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