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앞바다에 진을 친 1592년 4월 13일 이래 '동래 읍성'은 부산진성 북문설정이 그렇게 되는 입장이었지만 복원된 유진오, 이정람, 류성롱 들 0
정만진
풍신수길은 과연 가도입명, 즉 명을 치기 위해 조선 땅을 지나가는 것으로 만족했을까? 「1. 임진왜란 소개」는 풍신수길이 조선만이 아니라 중국까지 정벌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강화 교섭에서도 마지막까지 조선 남부(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의 영토 할양을 요구했다고 지적한다. 풍신수길의 최대 목적은 결국 영토 획득에 있었다는 결론이다.
풍신수길은 무엇 때문에 자꾸 영토를 확대하려 했을까? 「1. 임진왜란 소개」는 일본의 전국 대명(戰國大名, 센고쿠 다이묘) 제도와 통일 후 풍신수길의 입장에서 원인을 찾는다. 전국 대명은 일본 내에서 작은 나라의 임금 정도의 권력을 가진 지방 실력자들이다.
외침으로 얻은 땅을 실력자들에게 나눠주려 한 풍신수길전국 대명들은 풍신수길이 1587년 일본 전역을 통일할 때까지 서로 치열하게 싸웠다. 풍신수길은 자신의 편을 든 대명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었고, 대명들은 또 자신을 위해 열심히 싸운 가신(家臣, 나라 아닌 집안의 충신)들에게 재차 땅을 나누어 주었다.
통일을 이루고 나자 풍신수길은 더 이상 대명들에게 나눠줄 영토가 없었다. 따라서 대명들도 가신에게 나눠줄 땅이 없었다. 풍신수길은 땅을 조선, 중국, 인도에서 구하려고 했다. 임진왜란은 풍신수길과 그 휘하 대명들의 영토 확장 전쟁이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