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와 안토니오는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아이 엠 러브
숏컷으로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온 딸 이바는 엠마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여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준다. 예쁘다며 감탄하는 엠마는 벅찬 감정에 휩싸인다. 딸이 보여준 진실된 감정의 세계가 안토니오를 향한 감정의 씨앗을 건드리며 엠마를 겉잡을 수 없이 집어 삼키기 시작한다. 그 순간, 격렬한 사랑을 재촉이라도 하듯 화면에 비가 투두둑 떨어진다.
딸의 전시를 간다는 핑계로 운전대를 잡고 안토니오의 농가가 있는 산레모로 가는 엠마는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혼란스럽다. 산레모의 길거리에서 마주친 안토니오를 쫓는 눈길은 열병으로 가득찼다. 두세 번 스치듯 보고 몇 마디 나눈 것이 다지만 본인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상대를 채 알기도 전에 엠마는 본능적으로 안토니오에게 끌리고 있다. 운명적인 사랑이란 원래 이유도 모른 채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니까.
안토니오와 함께 농장으로 향하는 낡은 차 안, 창 밖을 스치는 거친 시골 길을 훑는 카메라는 엠마의 시선이다. 평소라면 그냥 길일 뿐인 그 길이 지금은 어떤 흥분을 가득 안고 있는지, 덜컹거리는 차에 따라 함께 흔들리는 앵글이 충분히 말하고 있다.
안토니오의 농장에서 사랑을 나누고 도시로 돌아온 그녀가 비져나오는 웃음을 막는 모습에 숨길 수 없는 사랑이 드러난다. 그 놀라움과 당황스러움과 약에라도 취한 듯한 기쁨과 달뜬 마음, 모든 것이 뒤섞인 사랑의 시작이다. 하지만 유부녀인 그녀의 사랑, 계급차를 비집고 나온 욕망이 순탄할 리 없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엠마의 아들 에도는 선량한 가치를 믿는 잘 자란 청년이지만 유약하다. 사업을 할아버지에게 넘겨 받은 아버지는 아랍의 거부에게 방직공장을 팔아 넘기려고 한다. 단순히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방직공장을 함께 해 온 직원들과의 의리, 신념, 공동체의 가치를 믿어온 에도는 고통에 빠지고 여동생 이바에게 달려간다.
"공장을 팔았어.""그래 우리는 더 부자가 되겠네."에도가 사다준 라뒤레의 마카롱을 먹는 이바는 행복해보인다.
"너가 행복해보이니 나도 좋다.""행복이란 단어는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해."여동생 이바는 에도보다 성숙한 것 같다. 자신들의 집이 부자인 것이 좋다고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사실 이 돈 많은 부르주아 층이 생활에 허덕이는 서민들보다 안 행복한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들은 행복할 기회가 더 많고, 돈이 방어막이 되니 불행에 빠질 일도 적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은 다른 사람을 상대적으로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어떡 배덕감이 들기도 한다.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틸다 스윈튼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 전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느낌도 크게 안 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세계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교양있는 것들로 가득차있어 그곳이 감옥이더라도 모른 척 갇혀있고 싶은 감옥이다. 때문에 에도의 고뇌와 고민이야말로 부르주아 적인 것이다.
아들 에도는 고통을 친구 안토니오와도, 엄마 엠마와도 나누지 못한 채 방황한다. 그 사이에 안토니오와 엄마는 모든 걸 벗어 던진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다. 안토니오의 농가에서 주로 데이트하는 그들, 예술작품으로 휩싸인 자신의 집이 아닌 안토니오의 낡은 시골농가에 가 있는 엠마는 어느때보다 편한 모습으로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한다. 명품 드레스 대신 안토니오의 낡은 옷을 빌려 입고 결혼하긴 전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머리도 짧게 잘랐다. 야외에서 풀과 꽃, 날벌레에 휩싸여 정사를 나눈다. 그러나 이 이중생활은 곧 끝난다.
사업상의 가족 만찬, 이도는 생선 스프가 나온 것을 보고 혼란에 휩싸인다. 엠마의 특제 러시아식 생선 스프, 이도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해 엠마가 특별히 자주 해주던 스프다. 그리고 그날의 요리는 안토니오가 맡았다. 모든 것을 깨달은 이도는 화가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엠마가 따라가지만 엠마를 뿌리치던 이도는 발을 헛디디며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에도가 죽고 절망에 휩싸인 엠마, 절망에 휩싸여있던 그녀는 장례식을 치르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자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 자신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이상 몰라. 나 안토니오를 사랑해.""당신은 사라졌어."비에 흠뻑 젖은 엠마가 남편에게 고백한다. 남편은 엠마가 사라졌다고 말하지만 사실 진짜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영화 제목 그대로 <아이 엠 러브> 내가 사랑이라는 말, 사랑하고 있는 내가 그대로 자아가 돼버린, 사랑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 단순한 제목이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내가 사랑이다.
[씨네밥상 레시피] 러시아식 맑은 생선 스프 우하(Ukah, 4인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