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행 비행기 티켓
김종성
"아, 망했다"난감했다. 시작은 그랬다. 설렘보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문제는 '환전'이었다. Sunny Bank(써니뱅크)를 통해 미리 '환전'을 해놓고서, 정신머리를 어디 놓았는지 돈을 찾지 않고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1시간 쯤 지났을까. 여행에 대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천천히 그려보는데, '근데, 나 환전 했나?'라는 물음표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환전을 한 기억이 없다. 당연히 손가방을 아무리 뒤져봐도 돈봉투가 없다. 이쯤되면 인정해야만 했다.
"아, 망했다!"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이른바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비자(VISA) 카드'였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ATM에서 돈을 인출하면 되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는데, 실제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챙겨갔던 여행 책자에는 '씨티 은행 현금 인출기'가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 있다고 했다(현재는 없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뒷면에 Interlink/PLUS, Maestro/Cirrus 표시가 있으면 해당하는 해외 ATM에서 인출이 가능하단다.
카드를 확인해봤는데, 그런 표시가 없다. 게다가 '해당하는'이라는 표현도 거슬린다. 체코 항공(대한항공과 공동 운항)을 탄 터라 1명밖에 없는 한국 스튜어디스를 찾아 문의를 해봤다. 돌아온 대답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난감함은 더욱 커졌다. 대부분의 결제는 카드로 하면 된다지만, 최소한의 현금은 필요했으니 말이다. 프라하 여행이 처음이라, 또 현지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어찌됐든 비행기 안에서 승부를 봐야 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은, 그리고 차분히 대화를 할 수 있는 지금이 최적의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환전을 신청해놓고 찾지를 못해서요. 현금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에요. 약간 여유가 있으시면 현금을 주시고 제가 도착하자마자 계좌이체를 해드리면 안 될까요?"
최대한 신뢰감 있고, 최대한 안쓰러워 보이게끔 말을 건넸다.(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여러 명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원을 보증할 수 없는 누군가와,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상태에서 돈 거래를 쉬이 해줄 리가 만무했다.
어쩌면 내가 반대 상황에 놓여 있었어도 그러했을 것이다. 초반에는 감정적 교감이 쉽게 이뤄질 것 같은 중년 여성을 공략했다. 하지만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면서 넉넉한 현금을 챙겨올 리 만무했다. 내 처지에 대해 공감은 이뤄졌지만, 문제는 거기까지였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대상을 바꿔보기로 했다. 패키지 여행객들이 아니라 회사 일로 출장을 온 것 같은 사람들로 말이다. 아예 화장실 통로 쪽에 서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러다 다행스럽게 출장을 왔던 중년 남성을 만나게 됐고, 생각보다 대화가 원활히 이뤄졌다.
사정을 이야기하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밝혔고, 공항에 도착하면 50유로를 주겠다는 게 아닌가. '와, 살았다!'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허나 부족하다 싶었다. 숨구멍을 뚫었지만, 좀더 넉넉히 현금을 확보해야 했기에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