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감 따기밀감을 가지에서 딴 후 다시 꼭지를 다듬어야 다른 밀감에 상처를 주지 않는다.
전병호
재미있던 밀감 따기도 한나절이 지나니 조금씩 힘들어졌다. 둘은 점점 말 수가 줄어 들었다. 아마도 전날 친구 말을 듣지 않았던 탓이라 생각했다. 해장도 할 겸 잠시 쉴 겸 둘은 은근히 새참을 기다렸다. 그런데 밀감 따기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나 가는데 쉬자는 말도 새참 먹자는 말도 없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새참도 없이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일을 시작하면서 둘은 투덜거렸다.
"뭔 놈에 일을 참도 안주고 시켜. 오후에는 막걸리라도 한 잔 주겠지. 노동에 막걸리가 빠지면 매너가 아니지."하지만 오후에도 막걸리 새참은 없었다. 우리는 그저 따고 또 따고 하루 종일 주구장창 밀감만 땄다. 새참 없이 반복되는 밀감 따기는 오전에 그리 작아 보였던 밀감 밭을 따도 따도 줄지 않는 거대한 공포의 밭으로 보이게 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무렵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은 그만 하시고 내일 아침 같은 시간에 오세요." 시간을 보니 오후 5시였다.
"제주도는 원래 새참을 안주나?"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물었다. 안주는 곳이 많다고 한다. 대신 일찍 끝내준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린 결정은 다음날 우리가 막걸리를 사가기였다. 역시 아름다운 제주도 밤을 한라산 소주 파티를 벌이고 찌뿌드드한 몸으로 둘째날을 시작했다. 일이 손에 익어서 그런지 전날보다 휠씬 속도가 붙었다. 하지만 새참도 없고 쉼도 없이 계속 밀감만 따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전날 오후에 맛본 따도 따도 줄지 않은 마법 같은 공포가 다시 시작되었다.
"새참도 안주고 쉬지도 않고 일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동행자는 사가지고 온 막걸리를 안주도 없이 한 모금 마시며 계속 투덜거렸다.
"아니 엊그제 후배 만나서 유목농민이 어떻고, 유목농업이 어떻고 핏대 올려 얘기 하더니 하루를 못 버티고 밀감을 따네 못 따네. 이건 좀 아니지 않아?"내 말에 둘은 빵 터졌다. 둘은 배꼽을 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덤 앤 더머'처럼 웃으며 피로를 풀고 악으로 깡으로 밀감 따기를 버텼다. 우리의 발악을 하늘도 귀엽게 여겼는지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밀감 따기는 못한다. 그 덕분에 오후에는 천막 아래서 밀감 다듬는 일을 했다. 오후 4시쯤 되니 주인이 이제 그만 하자고 한다.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지 우리는 소리 없이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