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영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장.
김영숙
<OBS>는 2007년 12월에 개국했다. 하지만 <OBS>의 역사를 얘기하려면 1997년 10월 개국한 <iTV>(인천방송)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 지부장은 <iTV> 공채 1기로 입사했다.
"1997년 4월 개국 준비팀으로 입사했다. 당시 전국 광역시ㆍ도 중에 인천만 지역방송이 없었다. 서울과 묶인 수도권이라는 조건으로 인천이 여러 방면에서 소외됐다. 인천시민들의 숙원이었던 <iTV> 개국으로 인천의 정체성과 고유한 문화를 쌓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당시 <iTV>는 <SBS>처럼 지역민영방송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라는 어려움에 광고수익 감소로 이중고를 겪었다. 그러다 LA다저스 박찬호 선수의 경기 중계권을 따내 한동안 활성화된 듯했으나 지배주주인 동양제철화학의 투자 거부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결국 방송위원회의 방송 사업권 재허가 거부로 정파(=방송 중단) 결정이 나, 2004년 12월 31일 <iTV>는 전파를 중단해야했다. '대주주의 투자의지 결여'가 재허가 거부 이유였다. 방송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프로그램 100% 자체 제작과 좋은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직원들은 방송이 중단된 날 울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공익적 민영방송'으로 새롭게 출발하기를 바라는 노조 조합원들과 시민들은 '새 방송 창사 준비위원회(이하 새방송준비위)를 출범시켜 공익적 민간자본과 시민주를 모집했다. 경인지역의 새로운 방송을 꿈꿨던 노조원들은 3년 넘게 '실업' 상황을 견뎠고, 인천과 경기 지역 시청자들은 이들을 믿고 힘을 보탰다.
정부는 바로 신규 사업자를 모집했다. 당시 영안모자(회장 백성학)가 사업권을 땄다. 원래 영안모자는 1차 공모 때 지원 사업자 5개 중 5위에 그쳤지만, 새방송준비위의 지지에 힘입어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2007년 6월 1일, 옛 <iTV> 노조원들로 구성된 OBS지부 조합원 160여명은 <OBS>의 직원으로 복직했다. <OBS> 개국 때까지 여러 어려움을 겪은 노사는 '건강한 방송, 공익적 민영방송을 만들겠다'는 가치에 흔쾌히 합의했다.
"<iTV> 폐업의 핵심은 대주주의 투자 거부였다. 그 상황을 보면서 주주의 투자 여부로 방송사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느꼈다. 전파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시청자가 주인이지, 결코 주주자본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공익적 민영방송'이라는 개념을 도출했다. 방송사는 공공적 역할을 해야 하기에 재원의 공익성도 담보돼야 한다. 그런 튼튼한 구조를 만들어야 방송을 사유화하려는 세력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모델은 유효하다."'희망'이라는 글자를 떼고 싶은 OBS희망조합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