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 의병박물관은 현관에 곽재우 기마상을 설치함으로써 의병박물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정만진
선사와 원시 |
선사(先史)와 원시(原始)는 다르다. 원시 시대는 사유 재산과 계급이 생겨나지 않았던 석기 시대를, 선사 시대는 역사가 기록되기 전의 시대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역사는 기원전 91년에 편찬된 사마천의 <사기>에 처음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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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 역사실에는 선사 시대 유물, 의령군 용덕면 운곡리와 부림면 경산리 고분군 등 가야 시대 유물, 그 이후 통일신라, 고려, 조선, 근대로 이어지는 각종 유물과 전적류 등이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의병 유물 전시실에는 보물 671호로 지정된 장검, 말안장, 팔각대접 등 '곽재우 유물 일괄'과 윤탁, 오운, 이운장, 강언룡, 안기종 등 모두 열여덟 명 장군과 관련되는 유물,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조선 관군 및 의병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국의 의병을 대표하는 박물관' 자부 의병 박물관은 스스로 '전국의 의병을 대표하는 박물관'이라고 자부한다. 누리집은 '의병 박물관은 의병의 역사와 기록들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경상우도 의령 지역의 곽재우 의병부대의 활약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유물 나열형의 보여주기 식 전시가 아닌 각종 관련 영상이나 모형, 디오라마 등을 통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남으로써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홍의 장군 기마상 오른쪽의 의병 유물 전시실로 들어서면 답사자를 위한 '관람 이동 동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우회전을 하지 말고 정면으로 나아가면서 관람하라는 화살표가 붙어 있다.
1. 임진왜란 소개 2. 18 장군 상징 조형물 3. 임진왜란사, 의령 지역 의병 활동 영상 4. 임진왜란 및 의병 관련 유물 5. 복식 및 무기류 6. 18장군 정보검색대 7. 망우당 곽재우 ZONE 8. 의를 부르는 붉은 북소리 영상 9. 의령 지역 의병 관련 유물10. 정암진 전투 모형11. 경상우도 의병 배치도12. 영산 전투 영상13. 나라 지킴이 결의서 및 방명록 목록만 훑어보아도 의병 박물관이 얼마나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는지 잘 확인된다. <1. 임진왜란 소개>의 일부에 해당되는 '임진왜란 의병 기록'을 읽는다. 이 게시물은 옛날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임진왜란 관련 문장들을 골라서 보여준다.
서행 |
보통 서행은 서(西)쪽으로 갔다(行)는 뜻이다. 본문의 서행(西幸)도 서쪽으로 갔다(幸)는 뜻이다. 행의 한자가 다른 것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임금이 갔기 때문이다. 행(幸)에는 '임금의 움직임'이라는 뜻이 있다.
사례로는 <선조실록> 1595년 1월 10일자에 '이산해가 서행(西幸)을 앞장서서 주장했다.', 1596년 1월 21일자에 '임진년에 임금의 수레가 서행(西幸)한 이후' 등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서행은 선조가 관서(關西) 지역으로 피란 간 일을 말한다.
관서는 서울을 지키기 위해 철령에 설치한 철령관의 서쪽 지역으로, 평안도 일대를 가리킨다. 관북은 함경도, 관동은 강원도이다. 정철의 <관동별곡>과 백광홍의 <관서별곡>같은 제목은 글이 어느 지역을 다룬 기행문인지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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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임금이 서행하여(관서 지역으로 가서) 나라 안이 텅 비고 적군으로 가득 찼다. 조정의 명령이 전해지지 않아 거의 나라가 없어진 지 한 달이 넘었다. 영남의 곽재우·김면, 호남의 김천일·고경명, 호서(충청도)의 조헌 등이 의병을 일으켜 원근에 (의병을 일으키라는) 격문을 전하니, 이로부터 비로소 백성들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생겼다. 각 고을의 선비 가문들이 곳곳에서 군사를 불러 모으니 의병장이라 칭하는 자가 무려 몇 백에 이르렀다. 이로써 왜적을 무찔러 나라를 회복하였으니 곧 의병의 힘이다. - 이수광 <지봉유설> 중에서'이수광은 "일본군이 나라를 거의 점령하면서 조정의 명령이 전달되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다.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켜 격문을 배부하니 백성들에게 나라를 위해 싸움터로 가려는 마음이 생겼다. 몇 백 명에 이르는 의병장들이 왜적을 무찔러 나라를 회복했으니 이는 곧 의병의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