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
KBS
식사와 배식을 끝마친 우리 2소대는 청소를 합니다. 각자 배식 도구를 닦고, 담당구역을 나눴죠. 한참 청소가 시작될 무렵, 조교가 저희를 불렀습니다. 깐깐하기로 소문이 난 조교였기에 긴장했죠. 혹시라도 청소구역을 지적받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얼굴에 인상을 쓴 조교. 뜻밖에도 그의 입에 나온 말은 대단히 의외였습니다. 조교의 목소리는 화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매우 불만스러운 음색이었죠.
"장교님들이 식판이랑 배식 도구 치우기 싫다고 한다. 너희가 치워라."조교의 손은 매우 지저분한 식판과 식기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장교들이 먹다 남긴 것들이죠. 저희는 매우 기가 막혔습니다. 자신들이 먹은 것을 떠넘기다니? 장교들을 선망으로 바라보던 훈련병 대다수의 반응은 변했습니다. 훈련병들은 투덜거렸죠.
일이 늘어난 것도 늘어난 거지만, 무엇보다 너무 치사했습니다. 자신이 먹은 것은 자신이 치워야 옳죠. 그런데 장교라고 우리 훈련병에게 떠넘겼습니다. 아무리 계급이 깡패라고는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계급은 지휘를 담당할 뿐이지, 남을 부려먹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후에도 장교들은 식판과 식기를 치우지 않았습니다. 고스란히 그 부담은 훈련병들에게 돌아왔죠. 힘든 훈련을 마친 훈련병들. 취사장에서의 피로함은 2배로 늘어납니다.
훈련병들 볼 때마다 매우 당당했던 그들문뜩 중세시대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기사들은 창이 부러지면 종자가 달려와서 갖다 줍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죠. 종자가 직접 가져다줍니다. 다 먹은 식기도 기사가 치우지 않습니다. '아랫것'인 종자가 치우게 마련이죠. 장교들의 식판과 식기를 치우며 저는 그런 모습이 연상됐죠.
한편, 소위들은 여전했습니다. 훈련병들을 볼 때마다 매우 당당한 모습입니다. 여기서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에게 식판과 식기를 떠넘기는지가!
그 일이 발생하자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 잔반을 버리려던 소위를 훈련병이 거부한 것입니다. 해당 잔반은 다른 쪽에 가서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소위는 이렇게 투덜대며 갔죠.
"쳇! 훈련받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 것도 우리가 해야 해? 병사들이 해야지!"그는 귀찮다는 듯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불만이었을 겁니다. '아랫것'인 병사들이 장교의 귀찮은 일을 받아주지 않는 것이요. 어쩌면 그 소위들에게는 이러한 일들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중세시대 기사가 종자에게 일을 떠넘기는 것처럼요.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훈련병들은 훈련을 받으러 왔지, 장교들 식판과 식기를 대신 닦아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걸 닦기를 원한다면 미군처럼 따로 용역을 고용해야 마땅합니다. 이런 부당한 처사는 병사의 장교에 대한 불신과 분노만을 키울 뿐이죠.
그럼에도 장교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병사들이 대들면 징계를 할 구실은 많거든요. 영창, 휴가제한 등의 징계를 원하는 병사들은 없습니다. 결국 '참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병사들은 억지로 하고 맙니다. 장교에 대한 분노를 키우면서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장교들의 지휘가 제대로 먹힐지 의문입니다.
저는 장교들의 식판을 닦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장교라고? 대한민국 육군 장교의 미래는 싹수가 노랗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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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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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던 식판 닦으라 떠넘긴, '싹수 노란'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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