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상범님의 영정사진
김성한
걷기는 대단히 역설적인 여행이다. 가장 쉽고 흔한 반면 가장 힘겹고 드물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장 값싼 동시에 가장 비싸고 호사로운 여행 기술이다.
10년에 걸쳐 우리 국토 13바퀴 3만2500km를 걸어 순례한 남상범 선생이 지난 2월말 담도암으로 별세했다. 1년 6개월간 암세포와 싸웠다. 유언에 따라 생전 그가 심어놓은 선산의 마디 굵은 벚나무 아래 수목장을 치렀다. 74세 일기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 '걷기 영웅'의 자리는 쓸쓸하고 신산했다.
선생은 걷기 열풍이 불기 전인 2005년 11월부터 병마에 쓰러지기 직전인 2015년 9월까지 국토 13바퀴를 홀로 여행했다. 필자는 2009년 5월 국토 8바퀴를 돌던 울산의 한 포구에서 그를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
국토 한 바퀴를 걸어 도는데 짧게는 3개월, 길면 10개월이 걸렸다. 20kg 배낭을 등에 지고 하루 평균 30~40km, 때로 80km를 걸었다. 강골 체력과 걷기에 대한 소명감으로 일정표는 늘 빠듯했다. 언젠가 그에게 '힘들면 천천히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허허, 먹고 자고 하루 경비만 10만원이 들어, 거지 노인네가 돈이 어딨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무모하고 때로 드라마처럼 장엄하고 가슴이 뛴다. 동해~남해~서해~전방 철책선을 거짓말 보태지 않고 마름질* 따듯 걸었다
.(*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도록 재거나 자르는 일)길 아닌 길을 걷다보니 영화에서나 있음직한 활극이 연출된 적도 부지기수. 맨 손으로 아찔한 해벽을 닌자처럼 넘나드는가 하면 풍경에 넋 놓고 있다 서해 밀물에 갇혀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뻘밭에 어깨까지 빨려드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풀독으로 양 종아리는 10년간 지독한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