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인사말을 하는 작가 담헌 전명옥
월간 미술세계
나는 담헌의 작품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이 자유로운 운필과 구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멋진 일탈은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근데 이런 거 작가에게 직접 물으면 재미없다. 예술의 자유는 감상자 또한 각자가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옳거니, 그의 입장이 되어 보자. 작품 감상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작가가 되어보는 것이다. 가당키야 하겠는가만 갈 데까지 가 보자. 뭐 그다지 손해 볼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다 아는 사실을 강조하거니와 담헌은 서예가다. 수천 년 서예 전통과 기법을 올곧게 사랑하는 서예가다. 서예 기법과 정신을 기반 삼아 일관되게 자기 의상을 예술 작품으로 펼치는 작가다. 서예의 도구와 재료, 붓과 먹을 절대가치로 삼는 작가다. 하얀 바탕에 까만 먹칠하기를 좋아한다. 빤한 이 사실을 아주 새삼스러운 것 인양 거듭 강조하는 내 의도에도 수판질이 따로 없다. 힘을 빼고 담헌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는 의미다. 먹이 담헌이고 담헌이 먹인 것이 그의 작품에 엉너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담헌의 작품은 천천히 봐야 한다. 턱 턱 던져놓은 선과 면들이 때론 글씨를 이루고 때론 형상을 희롱하면서 백지 위에서 맘껏 노니는 것을 제대로 보려면 찬찬히 훑어야 한다. 그의 작품은 분명 서예인데 통으로 보면 그림이다. 전통이란 구닥다리가 아니고 빛나는 현대임을 그림 같은 글씨로 밝히고, 글씨 같은 그림으로 밝힌다. 속없이 삐까번쩍한 현대는 전통을 들어 간단히 농락하고, 답습이나 하는 녹슨 전통은 힘없이 밀려나고야 만다는 것을 곰삭은 현대로 보여준다.
담헌이 선택한 특별한 소재들도 그렇다. 정통성 없는 정치나 세상사에 관해 내심으론 추상같은 호통인데 형상은 도무지 그게 아닌 게 많다. 두어 참 시간이 있거들랑 담헌이 던져 놓은 화두나 되새겨 보라는 식이다. 그렇게 던져놓은 화두를 들여다보면 바로 거기엔 어느 방향으로 칼금을 남길지 모를 서슬 퍼런 양날이 있다. 거리와 공간을 무시해버린 대척점 두 개가 겨루는 자웅이 있다.
그런데 담헌의 작품에서 없어서 좋은 것이 있다. 냉소다. 그의 작품에는 냉소가 없다. 양날과 두 끝을 힘 안 들이고 설렁 묶어 놓은 담헌만의 따뜻한 세계가 있을 뿐이다. 막걸리 한 사발 쾌히 들이켜고 늘어진 옷소매로 입가를 쓰윽 훔치는 그가 거기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