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담 밖에 조성한 장승과 솟대
손인식
암튼 그렇게 태극을 그리고 사괘를 설치해놓고 늘 대하며 살다 보니 나름대로 기분이 괜찮다. 더불어 세운 팔각 정자나 중담, 중담 밖 장승, 담장 상단에 기와를 잘라 꾸민 웃는 형상, 담장 공간에 입체로 서예 작품과 전통 문양을 넣어 조성한 꽃담도 내게 늘 뿌듯함을 선사한다. 나에 대해 애국자라는 어딘가 켕기는 평가를 대놓고 부정하지도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타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 된다."해외살이나 나들이가 흔치 않을 때 생긴 말이다. 하지만 재외 교포가 7백만을 헤아리는 이즘에도 여전히 부정할 수 없는 말임을 재외에 살아보면 긍정하게 된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몇 가지를 딱 한 글자로 압축하면 '피' 때문이다. '물보다 진한 것이 피'라더니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것이 피인 것이 틀림없다.
물론 그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타국에 살아도, 외국어를 잘해도 또 국적을 바꿨어도 피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리라.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점을 현지 생활이 늘 깨우쳐준다는 사실이다. 본인의 의지나 능력, 현실과 상관없이 대부분 상대방은 한국인을 그저 한국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에 다녀온 외국인이 한국 사람을 만나면 신이 나서 한국 이야기를 꺼낸다. 한국 뉴스를 들은 사람은 한사코 그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 단순한 사건 사고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 계절에 대해서도 묻고 촛불 시위도 묻는다. 이제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물을 것이다.
"나는 지금 한국인이 아니야. 국적도 이 나라고 이 나라에서 이 나라 말을 쓰며 살고 있거든…"설사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말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당장 이상한 사람 취급당한다. 아마도 뒤에서 수군대며 다시는 상대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차라리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현지의 현실만이 바뀌지 않는 한국인의 피를 의식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 한국인은 한국인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과 한국말을 하며 한국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더라도 퇴근을 하면 가족과 학연과 지연을 찾고, 한국 식당으로 몰린다.
아무리 현지 문화를 많이 알아도 실제 활용하는 문화는 바로 한국문화다. 그러니까 타국생활 그 중심에는 항상 '한번 한국인은 영원한 한국인'이다는 구호가 선명하게 새겨진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