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조수희
국립공원 입구까지 오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난생 처음 보는 거대한 산들이 보였다. 산 정상은 순백의 만년설과 빙하로 덮였고, 중턱에는 구름이 드리웠다. 산 아래에는 빙하수로 된 강이 흘렀다. 아름답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승모근이 쭈뼛 서고, 손에 식은땀이 가득 찼다. 괜한 기분일까, 생리 탓일까. 아랫배까지 시큰거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망했다. 나 정말 괜찮을까." 정상을 가겠다는 결심이 국립공원 입구에서부터 흔들렸다. 다른 이들의 가벼운 배낭과 내 10kg 배낭이 비교됐다. 국립공원 초입에서 만난 한국 대학생, 한솔이의 가방은 작은 크로스백이 전부였다. 한솔이의 가방에는 빵 한 봉지, 삶은 계란 3개, 핸드폰, 초경량 침낭, 물병, 간단한 세면도구만 들어있었다.
한솔이는 3박 4일 중 2박을 산장의 3-4만 원짜리 식사를 예약했고, 나는 모든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4일 치 식료품을 짊어졌다고는 해도 내 가방은 너무 무거웠다. 라면, 견과류 같은 건조식품 대신 양파, 오이, 버섯, 아보카도, 토마토같이 수분이 든 식품을 챙긴 탓이었다.
첫날은 10kg 배낭의 여파가 적었다. 국립공원 초입 파이네 그란데 산장에 가방을 내려놓은 후, 그레이 빙하를 보고 다시 파이네 그란데 산장으로 돌아오는 왕복 22km, 7시간 코스였다. 복병은 대여한 등산화였다.
가게에서 빌릴 때 약간 꽉 끼는 듯 했지만, 그때는 대수롭지 안게 여긴 게 문제였다. 오르막길을 가는 내내 엄지발톱이 쪼개지는 듯 했다. 실수로 돌부리라도 한번 차면 신음이 절로 나왔다.
고통을 견뎌내고 올라가 본 그레이 빙하 앞에서 외마디 환호성을 질렀다. 만년설이 가득한 고봉이 옥빛 호수를 둘러싸고, 거대한 호수의 끄트머리에 빙하가 절벽처럼 서 있었다. 상상하던 영롱한 푸른 빙하 대신 자갈과 흙이 섞인 검푸른 빙하였지만 그조차 신비로웠다.
발톱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은 하산하며 다시 시작됐지만, 아직은 첫날이었기에 견딜만 했고 경치 감상할 여유가 있었다.
# Day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