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에 반대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본관 입구에 최경희 총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최윤석
후배 얼굴 아른거려 찾아간 농성장 김아무개씨는 반년 만에 만난 부모님과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학교로 갔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날, 시차 때문에 뒤척이다 저녁때야 일어났다. 지난해 7월 30일이었다. 휴대폰을 켜자마자 김씨가 본 건 경찰로 가득 찬 이대 사진이었다. 김씨는 "빨리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라며 "다음날 경찰이 또 올 수도 있으니까 나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밤을 새우러 갔다"고 전했다.
같은 날, 이아무개씨 역시 경찰이 농성장을 주변을 뒤덮은 모습을 학내 커뮤니티에서 보고 뛰어갔다. 그는 "경찰이 방패를 밀고 들어온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대화하자고 찾아온다는 총장 대신 경찰이 온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있었을 동기와 후배를 지키기 위해 갔다"고 말했다.
이들이 학교로 달려간 이유는 단순했다. 이씨는 경찰과 대치하거나 몸싸움을 하며 놀랐을 친구와 후배 얼굴이 떠올랐다. 김씨는 언니를 쫓아 이대에 오고 싶어 했던 고3 여동생에게 '이런 학교'를 추천할 수는 없어 달려갔다. 이들 모두 농성이 끝나고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을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본관 점거 농성이 끝나고 나서야 내 심정이나 몸 상태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고 온갖 불안과 공포가 나를 뒤덮었다. 학교에서 나를 찾아내 징계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집에서 자고 있는데 경찰에 체포되는 상황까지. 자주 악몽을 꿨다."이씨는 "한동안 불면증이 심해 격일에 한 번밖에 못 잤다"고 털어놨다. 잠을 못 자니 바로 몸에 신호가 왔다. 그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이씨는 "병원에서 불안도가 너무 높다고 항불안제 및 수면제, 항우울제를 처방해줬다"라며 "점거 중 매일 바뀌는 상황 때문에 긴장 속에서 묻어 둔 감정들과 기억들이 올라와 발작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상을 잃었다. 그는 "덧셈, 뺄셈 같은 간단한 것도 못해 실수를 연발하고 토할 거 같아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친구도 만날 수 없게 됐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원래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우관계도 좋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플러스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모든 게 변했다"라며 "지금은 마이너스만 가득한 느낌이다. 농성 이후 카카오톡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서러움이었다. 이씨는 "학교본부는 농성이 끝나고 괴로워하는 학생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굳이 '시위'를 한 '학생'들의 아픔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모두 거짓말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