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이마
서울 종로에 갈 때마다 낡은 기와지붕을 한 한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닥다닥하게 모여 있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들리곤 한다.
근래 젊은 상인들이 찾아와 하나둘 가게를 여는 등 적막했던 한옥 골목길이 한결 활기차게 변하고 있어서다. 골목 담벼락에 동네 지도가 그려져 있는 안내판이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소개돼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익선동은 물론 북촌 지역의 한옥들을 지었다는 정세권 선생(1888~1965).
북촌 한옥마을이 조선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지었다고? 처음 듣는 얘기라 그런지 몹시 관심이 갔다. 가까운 관광안내센터와 북촌문화센터까지 가서 정세권이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책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을 만나게 돼 참 반가웠다. 경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의 명칭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한 후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2012년부터 조사해 쓴 이 책은, 일제강점기 북촌을 지킨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민족주의자 정세권의 삶이 담겨 있다. 오래전이지만 당시의 자료와 기사, 증언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좋은 역사공부가 되었다.
조선인 서민을 위한 도시형 한옥마을의 탄생 '그는 주로 종로 이북 조선인 거주 지역에 작은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인 한옥집단지구를 건설했다. 1920년대 일제가 계획적으로 북촌 진출을 시도하면서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위협할 때, 그의 대규모 한옥집단지구 개발은 조선인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어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조선인을 위한 주택을 조선인 회사가 설계해 조선인들이 살게 한 것이다. 이는 주택 부문의 물산장려운동이었고, 이를 통해 조선인의 북촌이 건재할 수 있었다.' - 본문 가운데익선동을 포함한 북촌 일대의 한옥들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조성된 근대식 한옥마을이다. 일본인이 경성에 일본식 가옥을 올리며 하루가 다르게 도시 풍경을 점령해 나갈 때 나타난 사람이 '건양사'라는 건설개발회사를 운영했던 정세권 선생이다.
북촌지역에 도시 서민들을 위한 한옥마을을 지은 것이다. 근대식 한옥 혹은 보급형 한옥인 셈이다. 이를 통해 많은 조선인이 북촌에 거주할 수 있었고, 조선인의 북촌을 그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당시의 '북촌' 지역은 현재의 삼청동, 가회동 일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대문 안 청계천 종로 북쪽 지역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