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저씨가 준 소나무(맨 오른쪽)와 느티나무(맨 왼쪽). 내 평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사진 왼쪽 파란 지붕이 아저씨네 집.
김창엽
귀농도 귀촌도 아닌,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 즉 귀연을 꿈꾸고 시골로 거처를 옮긴 게 2009년이었다. 헌데 자연과 가까운 시골에 산다고 다 자연주의자는 아니다. 사람은 적은데 농토는 남아돌 지경이니, 시골에서 농사로 생계를 꾸리려 한다면 기계나 화학비료 농약 등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언젠가 한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 톨 안 쓰고 400평쯤 되는 밭을 부치다가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욕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온 게 한두 차례가 아니다. 그만큼 풀 그리고 곤충이나 벌레들과 싸움이 힘들다.
그러나 아저씨는 가능하면 볏짚을 이용해 보온하고 닭똥 등을 퇴비로 활용하며 농약통을 짋어지는 대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여름에 밭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멘다. 요즘 부쩍 관심을 끄는 유기농이니 자연주의 농법이니 하는 걸 그가 배우려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또 아저씨는 그 같은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자연주의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은 나무를 유달리 좋아하는 점 외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두어 해전 공주시청에서 아저씨와 우리 집 앞으로 이어지는 도랑을 콘크리트 수로로 깔끔하게 바꿔준 적이 있었다. 시골 사람 열이면 아홉이 좋아하는 그런 시청 공사를 두고 아저씨가 혼잣말로 나지막이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자연스럽고 훨씬 좋은데..."라고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또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을 오랫동안 고집해 온 것도 아저씨의 자연주의 품성을 짐작케 한다. 지난 가을 "엉덩이 얼어 터져 제 명에 못 살겠다"는 아주머니의 해묵은 원성을 끝내 어쩌지 못하고 개조공사를 벌이긴 했지만, 그는 무엇이든 인공적인 건 최소한만 하려든다.
3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드는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나무 심기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관상용으로 혹은 울타리로 또 혹은 과일수확이나 수목 판매 등으로, 저마다 나무를 심는 이유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진정 나무를 사랑한다면, 그 마음은 자연주의에 맞닿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무 하나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땅을 흔히 '불모'라는 단어로 수식한다. 불모의 땅이 생명을 품을 수 없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자연주의란 섭리에 순응하는 삶의 양식일 것이다. 수목이 존재해야 사람도 동물도 터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의 출발점일 터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 걸쳐 주소지를 둔 곳이 족히 20곳은 된다. 그 중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실천적 모습에서 옆집 아저씨만한 이웃은 없었던 듯하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옆집 아저씨를 보며 느낀 점은 나무에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치고 최소한 나쁜 사람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사랑과 헌신 정도는 어쩌면 자연주의 삶을 가늠해 보는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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