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이주노동자 프락치 공작 규탄 기자회견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진행되었다.
고기복
출입국에서 프락치를 활용해서 단속한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군사정권에서나 있던 일이라고 알고 있던 프락치 공작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법무부 출입국은 우리 사회 가장 약자로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프락치 공작을 해놓고도 단속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놨다. 하지만 '협박과 회유'로 동료를 밀고하게 하고, 인간성을 좀먹게 한 프락치 공작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4개월간의 조사 결과는 비엣이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입국은 비엣에게 밀고를 강요했고, 다른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 적발했다는 이유로 그를 풀어주었다. 평소 '법, 법'하던 법무부는 헌법이 정한 적법절차를 무시했다. 그들은 법 위에 군림했다. 담당직무를 수행하면서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를 위반했다.
게다가 단속된 다른 미등록자들을 기만하기 위해 비엣에게 보호 명령서나 긴급보호서를 발급하지 않고 보호실에 하룻밤을 가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프락치로 활용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는 소홀했다. 단속된 이주노동자들은 출입국이 자신들의 이름과 회사 내 인원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데다, 비엣이 단속 후에 풀려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가 밀고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결과 비엣은 신변안전에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인권위 침해구제위원회는 '불법체류자 밀고 강요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 사건 결정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출입국 직원은 불법체류자 20명의 명단 제공을 유도하기 위해 강제퇴거 대상자라는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여 피해자 응우웬 꿕 비엣을 회유, 협박했다. 이는 헌법 제10조, 제11조, 제12조 및 제19조 등에 보장된 인권을 침해한 행위다. 피해자에게 불법체류를 하고 있는 동향 친구 등을 비롯하여 동료들을 밀고하도록 강요한 출입국의 행위는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정신적 기본권의 하나인 양심의 자유를 침해했다. 또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 제2항에도 위배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인귄위는 서울출입국관리소장에게 담당공무원 및 관리자를 경고 조치하고, 소속 직원에 대해 자체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비엣의 밀고로 단속된 사람들은 강제 추방되고 말았다. 비엣 역시 국내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베트남으로 귀국했다.
결국 이주노동자 프락치 공작 논란은 사실로 판명되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있지만, 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구제가 없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프락치 낙인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비엣도 피해자사람들 눈을 피해 베트남으로 귀국한 비엣은 고향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호치민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부모로부터 들은 소식은 절망적이었다. 부모님은 "동네에서 너 때문에 빚도 못 갚고 추방됐다고 난리다. 나타나기만 하면 죽인다더라"며 자식을 원망했다. 그 동네는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의기투합해서 한국으로 떠났던 사람이 14명이나 되었다. 좁은 동네에서 프락치 밀고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원망을 비엣 부모는 오롯이 짊어져야 했다.
비엣이 귀국할 즈음에 이주노동자 프락치 사건이 있었음을 확인시켰던 반둥 역시 귀국했다. 대부분의 비엣 동네 사람들이 송출 비용을 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추방되어 허름한 대나무 집을 벗어나지 못한 것과 달리 반둥은 번듯하게 집을 지었다. 그것도 응에안에서 유명한 끌로 해수욕장 앞에 하얀 대리석으로 벽면을 입힌 이층집이었다.
집을 다 짓고 반둥은 비엣 때문에 추방된 동생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다. 동생들은 여전히 비엣에 대해 분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그들에게 반둥은 그간 사정을 거듭 말해줬다. 그렇다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가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반둥이 한국에서 성공하고 돌아왔다고 다들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동생들 형편을 빤히 알기 때문이었다.
프락치 사건 당사자들이 다 귀국하고 잠잠해질 즈음 반둥이 연락해 왔다. 그는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라며 그간 소식을 전했다. 허혈성 장염 때문에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 중이라고 했다. 비엣을 가만두지 않겠다던 그가 마음을 돌이킨 건 그런 이유가 있었다.
"비엣의 친구들은 가슴에 품은 독을 내려놓지 못했어요. 사람이 죽을 지경이 돼 보면 그 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란 거 알아요. 침대에 누워 해수욕장만 바라보는 사람을 보세요. 좀 너그러웠으면 좋겠는데, 피해 당사자들은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비엣도 피해자라는 걸 받아들인다는 게…."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출입국의 프락치 공작이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에도 충격이었다. 학생, 민주화세력들을 대상으로 했던 프락치 망령이 우리사회의 가장 약자라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과거 군사정권, 야만시대의 산물이었다.
이주노동자 프락치 공작으로 한 개인의 인생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엣은 고향도 마음대로 찾아갈 수 없는 절망을 겪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가슴에 독을 품고 원망과 비탄 속에 청춘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 사람, 어떻게 살고 있는지. 프락치 피해자들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비엣과 화해했는지. 반둥은 항암치료를 잘 끝마쳤는지. 프락치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가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묻고 싶다.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벗어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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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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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말하던 법무부, 이주노동자 프락치 공작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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