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품을 잃어버린 장소, 왼쪽 상단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음 (사진은 여름에 촬영)
김경준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운동하던 장소로 돌아왔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니 반갑게도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서둘러 CCTV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범인이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테니 CCTV를 통해 범인의 인상착의와 도주 방향만 파악한다면 찾을 확률이 높아지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CCTV를 관리하는 서울시 동부공원녹지사업소로 뛰어 들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CCTV 열람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임의 열람이 불가능하다"며 "경찰관 입회 하에만 열람이 가능하다"고 통보해왔습니다. 법이 그렇다고 하니 저도 더 할 말은 없었습니다. 즉시 경찰에 신고를 했고, 수 분만에 출동한 경찰관들과 함께 다시 관리사무소를 방문해 CCTV 열람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여전히 난처하다는 듯이 "CCTV 담당 직원이 출근하지 않아 열람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CCTV를 조작할 수 있는 담당 직원이 별도로 있는데 그 직원은 주말에 출근하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맥이 빠진 저는 담당 직원에게 재차 물었습니다.
"저야 물건을 잃어버렸다쳐도 그만이지만, 만약에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CCTV 담당 직원이 없다면 열람이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그러자 직원은 "정말 위급한 상황이면 담당 직원을 불러서라도 확인하지 않겠느냐"며 "공원에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니 본인이 잘 간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습니다.
허술한 CCTV 관리 체계물론 물건을 잃어버린 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소유자가 물건을 잘 간수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공원 관계자의 말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황당함을 느꼈던 것은 CCTV 관리 체계의 허술함이었습니다.
모든 사건에는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유괴사건이나 미아사건처럼 사람의 생명이 걸린 사건은 1분 1초를 다투는 시급한 사건입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한 사람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CCTV를 통해 범인을 확인하려고 들어갔더니 담당 직원이 없어 열람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위급한 상황이면 담당자를 부르지 않겠느냐"는 답변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 상황에 직원이 어딨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직원이 출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직원이 연락두절 상태에 있기라도 한다면, 골든타임은 영영 놓치고 마는 셈입니다.
"현실적으로 공무원 인력 충분하지가 않아" 이에 대해 서울시 관내 공원 운영을 총괄하는 공원관리팀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습니다. 그러자 관계자는 "모든 직원이 CCTV를 조작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주말이라고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마땅히 수시로 CCTV를 관리하는 비상대기인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관계자는 "공무원 인력이 충분하지가 않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겠느냐"는 질문엔 "전 직원을 대상으로 CCTV 조작이 가능하도록 교육하는 방안이 있겠지만,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에도 바쁜 공무원 전체를 대상으로 CCTV 조작을 교육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덧붙여 해당 관계자는 "사실 주말에도 CCTV 열람이 가능한 담당 직원을 배치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민원인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라며 제게 공무원 인력체계상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양해를 구했습니다.
관계자의 해명에도 납득할 수 없었던 저는 비상 상황 발생시 CCTV 운영에 관한 위기대응체계가 존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위기상황에 관한 매뉴얼을 담당한다는 개인정보보호팀의 관계자는 "서울시는 관내 공원의 전체적인 운영에 대해서만 총괄한다"며 "공원에 설치된 CCTV에 관련해서는 해당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직접 담당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보안 인력 있지만, 즉각적인 CCTV 확인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