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ECC
Zicarlo Aalderen flickr
'음기'라는 단어 하나로 대학의 학문적 속성을 무참히 거세당했던 이 이야기를 전하며, 2017년 오늘을 이화대학을 소개합니다.
음, 서론이 길었네요. 오늘은 2017년 3월 8일, 109번째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이날을 맞아 저는 쓸거리를 하나 전달받았습니다. '여대생으로 느꼈던 사회적 편견이나 그 편견에 대항했던 경험, 혹은 여대를 다녀서 좋은 점' 등을 담은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제가 후배님께 이 글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죠.
사실, 이 주제는 낡디낡았습니다. 이화대학의 전신인 이화학당이 생겨난 지 130년이 지났고, 그 130년이 오롯이 "여자대학 존재 증명 투쟁의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겁의 시간 동안 여학교는 스스로 그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내야 했습니다. 사회는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이 학교가 살아남을 길은 "스스로에 대한 적극적인 변호"였습니다.
"여대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 앞에 놓인 현명한 대답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남성과 여성이 결코 평등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시대적 징후, 그 분위기 속에서 여자대학이 만들어낸 성취. 이 두 가지로, 학교는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변호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대기업 여성임원 출신 대학 1위' '고시 합격자 n위'처럼 낯간지러운 말들로 범벅이 되기도 했죠.
저는, 또다시 이를 주제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그 절박한 전투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대학에 '김치녀' 같은 건 없어요", "여대도 재밌고 좋아요" 따위의 변호를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존재 증명의 책임이 여전히 대학 구성원에게 주어지는 현실은, 제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것을 증명해야만 할까? 증명 투쟁과 변호의 시간은 언제쯤 끝이 날 수 있을까?"미션 스쿨, 그러나 무지개 깃발이 펄럭인다그래서 오늘은 그러한 '증명'을 이제 그만해보려 합니다. 그저, 여자 대학의 풍경을 담담히 기록해보려고요. 그 잔잔한 풍경 속에서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은 '낯설지 않은 평범함'입니다. 아, 이 공간도 그저 학생들이 공부하고, 숨 쉬고, 노니는 그런 곳이구나. 여자대학이라는 이유로 학문적 책임을 거세당하고, 음기 가득한 여성적 역할을 다해내야 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첫 번째 풍경은 크리스마스 즈음인 12월의 학생문화관(아래 '학문관')입니다. 선교사가 설립한 미션 스쿨인 우리 대학은,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는 성탄절이 다가오면 학문관에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합니다. 기독교 대학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함께 펄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자대학은 성적 자유와 해방, 관용과 평등의 공간입니다. 사회적으로 억압받은 섹슈얼리티는 이 공간에서 비로소 나의 것이 됩니다. 여성 그리고 여성 퀴어들 역시 관용과 평등에 대한 믿음으로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합니다. 이곳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도 좋습니다. 다양한 자아 표현 방식에, 아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거든요. 보라색으로 염색을 하든, 가슴이 깊게 파인 상의를 입든, 민낯으로 학교를 돌아다니든 그 자체가 나 자신이고 나의 정체성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당당히 표출하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해방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성소수자인권동아리는 아주 큰 무지개깃발을 내걸 수 있고, 여성주의를 공부하는 다양한 그룹들은 자유롭게 섹스토크를 할 수 있습니다.
'진녹색의 힘'을 보다제게 떠오르는 두 번째 풍경은, 우리 대학의 진녹색 로고입니다. 저는 종종 이 대학의 로고가 노란색이나 분홍색이 아니라는 것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노란색이나 분홍색이 '여자 색'이라서 싫다기보다는, 강인함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진녹색이 좋았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진녹색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된 순간은, 지난해 여름이었습니다. 정권과 결탁한 사상 최악의 학사문란 사건으로 학교가 떠들썩할 때, 대학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교수님들의 선언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이날 교수님들은 다 함께 진녹색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오셨습니다. 저는 그 풍경에서 녹색의 강인함을 처음 느꼈습니다. 새싹 따위의 여리고 어린 것들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녹색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강인한 녹색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