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빽빽해도 나무가 아직 잎을 내지 않으니 산은 속살을 그대로 내보입니다.
배석근
아내의 말을 경청하고 순종하기 아내의 말을 듣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에서입니다. 하나는 경청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아내는 그날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저녁 식탁에서 곧잘 이야기하곤 합니다. 때로는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씩씩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 이야기를 잘 들어 줍니다. 그렇지, 맞아, 좋지, 저런~ 같은 추임새를 넣어 주면 이야기하는 아내는 더욱 신이 납니다.
아내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열심히 얘기하는 것은 그 얘기에 동의나 조언을 구하는 건 아닙니다. 사리판단을 부탁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내는 그저 그날 있었던 일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고, 저는 그 얘기를 그냥 '잘' 들어 주면 됩니다. 그게 다입니다.
또 하나는 순종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이 다소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순종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냥 순종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선사시대부터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좀 달랐다고 합니다. 남자는 사냥을 해야 하니 들짐승 같은 목표물을 향해 달렸습니다. 당연히 시야가 좁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사냥을 위해 떠나간 집을 온전히 보호하고 돌봐야 했기 때문에 주위를 360도 살펴가며 낯선 사람이나 짐승을 경계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안목이 넓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지만, 여자는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합니다.